지난달 25일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는 고모(36)씨가 제주에 내려오기 전 범행 후 시신 처리 방법까지 치밀하게 계획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제주동부경찰서는 고씨의 휴대전화 등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을 의뢰해 고씨가 전 남편 강모(36)씨를 만나기 전 ‘니코틴 치사량’, ‘살인 도구’ 등을 다수 검색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5일 밝혔다.
고씨가 배편으로 제주에 들어오고 나서 범행 장소인 펜션에 입실하기 전, 범행에 사용할 흉기를 미리 준비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던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제주 동부경찰서 박기남 서장은 “고씨는 우발적 범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경찰이 확보한 증거를 토대로 계획 범죄임을 밝히는데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고씨가 범행을 은폐하려고 한 정황도 파악했다.
고씨는 범행 이틀 뒤인 지난달 27일 숨진 강씨의 휴대전화를 이용, 자신의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마치 강씨가 살아 있는 것처럼 꾸몄다.
경찰은 펜션 내부에서 살인과 훼손이 모두 이뤄진 것으로 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혈흔 형태 분석 전문가 6명을 투입해 숙소 내부 혈흔 형태를 분석하고 있다.
이와 함께 피해자는 키 180㎝, 몸무게 80㎏의 건장한 체격인 반면 고씨는 키 160㎝, 몸무게 50㎏으로 체격 차이가 큰 만큼 고씨가 범행 전 약물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독물 투입 여부 확인을 위해 약독물 검사를 진행 중이다.
고씨의 이동 경로도 새롭게 밝혀졌다. 고씨는 전남 완도에 도착한 후 영암과 무안을 지나 경기도 김포시에 잠시 머무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고씨가 이동 중에 시신을 최소 3곳의 다른 장소에 유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과 해경은 고씨가 전 남편의 시신을 훼손해 해상과 육지에 유기한 정황이 포착됨에 따라 광범위한 수색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18일 자신의 차량으로 배편을 이용해 제주를 찾은 고씨는 약 1주일 후인 같은 달 25일 범행 장소인 펜션에서 전 남편을 만났다.
경찰 등에 따르면 고씨는 지난달 28일 제주를 빠져나가면서 배를 타기 2시간여 전에 제주시의 한 마트에서 종량제봉투 30장과 여행 가방 외에 비닐장갑과 화장품 등을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씨가 이용한 완도행 여객선 CCTV에는 고씨가 무언가 담긴 봉지를 바다에 버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구체적인 개수 등은 식별이 불가한 상태다.
경찰은 고씨 행적을 추적해 지난달 말쯤 아버지 자택이 있는 김포시 일대에서 배에서 버린 것과 유사한 물체를 버린 정황도 포착해 경찰 1개 팀을 파견했다.
한편, 경찰은 5일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고씨 얼굴과 이름 등 공개 범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제주=주미령 기자 lalij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