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에 반짝이는 유리알은 전조등을 켜고 야간주행을 하는 자동차 불빛에 차선을 반사시켜 안전운전을 돕는다.
하지만 유리알 첨가량을 줄이면 차선의 휘도(밝기)가 그만큼 낮아져 밤이나 비가올 때 제 기능을 못하게 된다.
전북지역 차선도색 업자들이 차선에 유리알을 적게 넣어 그동안 배를 불려온 것으로 밝혀졌다.
밤이면 차선이 보이지 않고 비가 내리면 홀연히 사라지는 이유가 드러난 것이다.
전북경찰청 교통범죄수사팀은 4일 차선도색 업체 대표 A(40·여)씨와 무면허 하도급 업자 B(54)씨 등 29명을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부실시공을 묵인하고 준공검사서를 허위로 작성해준 혐의(허위공문서작성)로 전주시 소속 공무원 C(38)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A씨 등은 지자체 차선공사 과정에서 고액의 수수료만 주고받는 불법하청을 일삼고 부실시공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C씨는 부실시공을 눈감아주고 준공검사서를 발급해준 혐의를 받고 있다.
A씨 등 건설업자들은 지난해 전주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 LH가 발주한 21억원 상당의 차선도색공사 24을 수주한 뒤 공사를 부실하게 해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원청업체들은 하도급을 주는 대가로 전체 공사 금액의 30~40%인 6억2000만원 정도를 수수료 명목으로 챙겼다.
불법 하도급을 받은 B씨 등은 실제 공사비의 60%만으로 공사를 진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청업체들은 공사비가 적어 발생하는 손해를 막고 이윤을 남기기 위해 차선 유리알 재료를 설계의 절반수준에 불과한 양을 사용했다. 때로 저렴한 일반 유리알로 부실공사를 진행했다.
실제 일반적으로 1.5~1.8㎜ 두께에 해당하는 차로의 도막(도로에 발린 도료의 층)은 절반 수준에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야간이나 비가 내릴 때 운전자의 인식을 돕는 휘도(차선의 밝기)도 기준치 미만으로 측정됐다.
경찰 조사 결과 A씨 등 ‘도장공사업’ 관련 면허만 가진 업자들은 도장기기 등 장비와 인력, 기술 등이 없어 차선도색 공사를 낙찰 받더라도 직접 시공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주야 또는 기상에 상관없이 운전자가 노면정보를 알 수 있도록 차량 좌우 측에 자동분사기가 고정된 자주식(2액식 KSM6080-5) 장비사용이 의무화됐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15년 5가지 노면표지용 도료작업 방식 중 상온건조형과 가열 등 2가지를 전면 금지하고 엑포시 수지를 원료로 한 융착식(KSM6080-4)는 시내도로에 제한적으로 사용하도록 했지만 역시 규정을 따르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로 인해 차선의 내구성이 떨어져 비가 오거나 밤이 되면 차선이 잘 보이지 않게 돼 교통사고 위험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전주 한 초등학교 앞 신설도로의 부실시공 의심 첩보에 따라 그동안 수사를 벌여왔다.
이후 전주시, 도로교통공단과 함께 휘도측정 없이 준공된 도로를 조사한 결과 부실공사 정황을 포착하고 A씨 등 업자들을 무더기로 검거했다.
경찰은 다른 지자체에서도 불법 하도급에 따른 차선도색 부실시공 사례가 더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업체 대표들과 감독 공무원 사이에 뇌물이 오갔는지 여부도 수사할 방침이다.
황호철 전북청 교통범죄수사팀장은 “수사 결과 24건의 공사 중 단 한 건만 정상적으로 시공된 것으로 파악됐다”며 “시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도로 차선도색과 교통 시설물 공사에 대한 수사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