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3일 북핵 문제와 국회 정상화 문제 등을 두고 정면 충돌했다. 각각 ‘알릴레오’와 ‘TV 홍카콜라’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인 두 사람은 이날 ‘홍카레오’라는 제목의 유튜브 ‘토론배틀’에서 각각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을 대표해 160분 간 사전원고 없이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국회 정상화를 위한 여야 간 대화가 좀처럼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상황에서 양측 진영을 대표하는 논객의 공개 토론이라는 점에서 이번 토론배틀은 많은 주목을 받았다. 홍 전 대표는 토론 직후 기자들과 만나 “국정 전반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했다. 의견이 합치된 부분도 있었고 상치된 부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당초 예정과 달리 업로드 지연으로 유튜브가 아닌 팟캐스트 채널 팟빵의 ‘알릴레오’에만 토론 내용이 일부 공개됐다. 공개된 내용 가운데 두 사람이 충돌했던 부분과 의견 일치를 봤던 부분을 정리해봤다.
①북핵 두고 유시민 “안전보장 요구용” vs 홍준표 “적화통일용”
유 이사장과 홍 전 대표는 북한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개발한 목적과 전망을 두고 상반된 입장을 내놨다. 홍 전 대표가 먼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유 이사장은 “포기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유 이사장은 “어마어마한 수천 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는 세계최강국 미국에게 (북한이) 재래식 무기로 어찌할 수가 없고 안전보장을 받고 싶은데 미국이 상대를 안 해주니까 미국이 북한을 상대하게 하기 위해 (핵무기를) 만든 것”이라며 “이게 올바른 생각이란 건 아니지만 북한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홍 전 대표는 “나는 그렇게 안 본다”면서 “핵을 개발하고 탄도미사일까지 만든 건 적화통일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탄도미사일은 유사시에 미국의 개입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일본이 공격 받을 때) 자동참전을 보장한 미·일 상호방호조약과 달리 한·미 상호방호조약은 자동참전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유 이사장이 “북한은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다. 중국에서 연료만 끊어도 비행기도 못 뜬다”고 반박하자 홍 전 대표도 “(여권이) 이런 인식으로 어떻게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 이사장은 “북한이 핵을 쓸 상황을 안 만드는 게 현명한 것”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하고 있는 협상도 싼 값에 미국 돈 안 들이고 물건(핵)을 사버리는 전략”이라고 재반박했다. 그러자 홍 전 대표는 “핵 포기하는 순간 김정은 체제는 바로 무너지기 때문에 북한은 핵을 절대 팔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핵 균형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②패스트트랙 정국에 유시민 “한국당 이해 안 돼” vs 홍준표 “선거제·공수처 타협 불가”
유 이사장과 홍 전 대표는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의 선거제 개혁안 등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계기로 극대화된 여야 대치를 두고도 정반대 입장에 섰다. 유 이사장이 먼저 한국당의 패스트트랙 저지 장외 투쟁에 대해 “국회의원이 100명 넘는 당이면 국회에서 자신들의 국정 비전을 설파하고 부족하면 장외 집회를 하면 될 것을 왜 국회를 마비시키느냐”고 비판하자, 홍 전 대표는 “문제의 출발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며 “1987년 이후 30여년동안 선거법을 일방적으로 처리한 사례가 없다”고 주장했다.
유 이사장은 “시민들의 정치적 요구가 다양해지는데 정치는 매번 두 개의 거대 정당으로 쪼개져 이기면 집권당, 지면 제1야당이 됐다”며 “그러니 밤낮 싸우고 혐오감을 조장하는 정치가 되는 것”이라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홍 전 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안에 대해 각각 “군소정당을 위한 제도일 뿐, 민의를 위한 게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이상한 기구”라며 깎아내렸다. 이에 유 이사장은 “설령 한국당 주장이 옳더라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고집만 하면 독선이 판치는 세상이 된다”며 한국당의 패스트트랙 저지를 비판했다. 그러자 홍 전 대표는 “내가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할 때 민주당도 걸핏하면 위원장석을 점거하고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쇠사슬과 밧줄로 몸을 묶곤 했다”고 주장했다. 유 이사장은 “현재 국회법(국회선진화법)을 만든 뒤로는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다”고 재반박하자 홍 전 대표는 “아무튼 타협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현 정국이 해방 정국(1945년 광복 직후)과 비슷한지 여부를 두고도 신경전을 벌였다. 홍 전 대표는 “지금 대한민국 상황이 해방 직후의 좌익 우익 혼란상보다 더 극심하다”고 지적했지만, 유 이사장은 “해방 정국에서는 서로 암살하고 몽둥이 들고 난리 났었다. 하지만 요즘은 서로 훼방을 놓지는 않는 걸 보면 지난 70년 간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태도는 많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③‘좌파독재’ 표현과 최근 잇따른 한국당 막말 두고는 일부 공감대 형성
두 사람은 다만 한국당이 내세우는 ‘좌파독재’라는 표현이 다소 부적절하다는 지점에서는 일부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유 이사장이 “물론 대통령이 야당과 대화를 소홀히 한 건 비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좌파독재라고 하면 (공감할 수 없다)”고 말하자 홍 전 대표도 “좌파 독재란 말은 부적절하다. ‘좌파 광풍시대’가 맞다”고 말했다. 홍 전 대표는 “사실 독재정권은 옛날에 우파 쪽에서 했지 않느냐. 차라리 좌파 광풍시대라고 하고 이걸 멈추게 하는 방법이 뭔지 투쟁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최근 한국당 인사들의 잇따른 막말 논란에 대해서도 유 이사장과 홍 전 대표는 부분적으로 공감하는 취지의 발언을 주고 받았다. 홍 전 대표가 “야당은 힘이 없기 때문에 못된 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 유 장관(유 이사장)이 과거 야당 할 때에도 아주 못됐다”고 말하자 유 이사장도 “원래 야구할 때에도 상대방 타자가 잘 하면 (일부러) 빈볼을 맞히기도 한다”며 수긍했다. 다만 유 이사장은 “(빈볼을 맞히더라도) 머리를 맞혀서는 안 된다”며 뼈 있는 말을 덧붙였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