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6일에 이 포스터 보고 꼭 태극기 달아 주세요.”
어린 친구는 혹시나 어른들이 흘려서 볼까 걱정이 됐는지 ‘태극기 달아주세요’라는 말 사이에 ‘많이’라는 단어도 추가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등장한 깜찍한 포스터 얘기다. 이 포스터가 부착된 건 지난달 30일이다. 연필로 꾹꾹 눌러쓴 포스터는 어른들을 향해 현충일에 태극기를 달아 달라는 요청이 담겨 있었다.
주민들은 삐뚤빼뚤한 글씨체며 오·탈자만으로도 나이를 밝히지 않은 포스터 작성자의 연령을 가늠할 수 있었다. 다소 어설프기는 했지만 작성자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만큼은 확실했다.
포스터에는 태극기 봉에 걸린 두 개의 태극기가 그려져 있다. 태극무늬와 태극기 모서리 4개의 괘인 ‘건곤감리’, 태극기 봉 끝의 무궁화 봉우리에만 색상을 넣었다.
한쪽은 국경일과 기념일 게양 방식에 따라 태극기를 그렸다. 광복절, 삼일절 등 국경일에 해당하는 날들도 나열했다. 다른 한쪽은 조의를 표하는 날 게양하는 방식이다. 태극기 봉의 무궁화 봉우리 끝에서 태극기의 폭만큼 내려서 달아야 한다는 것도 알려주고 있다. 포스터 작성자는 ‘중요’라고 표시했다. 현충일이나 국가장 등에 조의를 단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여기에 태극기 게양시간도 덧붙였다.
현충일의 의미도 상세히 설명했다. 포스터 작성자는 이날을 “애국선열과 국군 장병들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국가가 정한 날”이라고 했다.
또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 희생하신 순국선열과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희생한 전몰 호국 용사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고 명복을 기원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현충일에 해야 할 일도 언급했다.
포스터 작성자는 “현충일은 피를 흘리며 국가를 지키기 위해 싸워 한 송이 꽃이 되어 하늘나라로 가신 고귀한 분들(을 기리는 날)”이라며 “태극기를 게양하면서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신 장병들을 기리자”고 했다.
포스터를 본 주민들의 반응도 내용만큼이나 훈훈하다.
“멋집니다! 알려줘서 고마워요, 최고”라거나 “좋은 정보 고마워요”라는 글을 메모지에 적어 포스터 위에 붙여놨다.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A씨는 따뜻한 이야기를 공유하기 위해 사연을 인터넷 포털에 올렸다.
그는 국민일보 기자에게 “처음에는 누가 물건을 잃어버려서 메모를 붙여 놓았나 싶었다”면서 “그런데 자세히 읽어보니 아이가 손으로 적은 현충일 포스터에 주민들이 댓글처럼 남긴 거라 훈훈하고 기분이 따뜻해졌다”고 말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