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송월 총살-리수용 처형…오보에 ‘죽었다 살아난’ 北 인사들

입력 2019-06-03 16:56 수정 2019-06-03 17:09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일 제2기 제7차 군인가족예술소조경연에서 당선된 군부대들의 공연을 관람했다. 최근 숙청설이 돌았던 김영철(빨간 원) 노동당 부위원장이 김 위원장과 동석해 건재함을 확인했다. 조선중앙통신 캡처

숙청됐다던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보란듯이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책임을 지고 강제 노역 중이라는 국내 매체의 보도와 달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행사에 동행해 건재함을 과시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3일 김 위원장이 제2기 제7차 군인가족예술소조경연을 관람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의 사진에서 김 부위원장은 김 위원장의 왼쪽 다섯 번째 좌석에 앉았다. 김 위원장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부인 리설주 여사와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왼쪽에 군 서열 1위인 김수길 총정치국장이 배석했다.

앞서 지난달 31일 조선일보는 김 부위원장이 2월 베트남 하노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에 책임을 지고 혁명화 조치를 당했다고 보도했다. 혁명화 조치는 강제 노역 및 사상 교육을 받는 처벌을 말한다. 정치사범으로 분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시작된 북·미 대화 국면에서 김 부위원장은 대미 협상을 총괄했던 핵심 인사였다.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 김 부위원장의 숙청 보도는 향후 북·미 협상의 변화를 예고한, 충격적인 소식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숙청설은 사흘 만에 허위로 확인되며 해프닝으로 끝났다.

현송월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장이 지난해 1월 21일 강원도 강릉 씨마크호텔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강릉아트센터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북한발 오보는 처음이 아니다. 북한 고위 인사들 가운데는 숙청되거나 처형됐다는 소식이 국내외 언론을 통해 보도된 뒤 뒤늦게 멀쩡히 살아서 나타난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는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이 있다. 현 단장은 2013년 음란물 제작에 연루돼 기관총으로 총살됐다는 국내 언론 보도가 있었지만, 이듬해 5월 북한 전국예술인대회에 등장했다. 현 단장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때 방남해 북한 예술단의 공연을 진두지휘했고, 같은 해 4월 판문점 남측지역에서 김 위원장을 수행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

북한 요인의 숙청·처형설은 김 위원장의 고모부인 장성택이 처형된 2013년 12월 직후에 횡행했다. ‘북한의 2인자’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직후에 숙청설에 휩싸였다. ‘장성택 라인’으로 분류됐던 최 상임위원장은 2014년 5월 총정치국장에서 물러난 뒤 한동안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실각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실각설은 곧 감금·처형설로 번졌다. 하지만 같은 해 9월 인천아시안게임 준비 과정에서 김 위원장을 수행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목격돼 건재한 입지를 확인했다. 최 상임위원장은 이 대회 종반에 깜짝 방남해 폐막식을 관전했다.

최룡해(왼쪽)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2013년 5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친서를 들고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신화 뉴시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금고지기’로 불렸던 리수용 노동당 부위원장 역시 장성택 사망 직후 처형설에 휘말렸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장성택 처형 직후인 2013년 12월, 리 부위원장이 장성랙 라인 숙청 와중에 처형됐다는 초대형 오보를 냈다. 리 부위원장은 현재 김 위원장의 정상외교를 수행하는 핵심인사 중 한 명이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마주한 카운터파트가 바로 리 부위원장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고모이자 장성택의 부인인 김경희 전 노동당 비서는 2015년 2월 일본 공영방송 NHK의 오보로 ‘죽었다 살아난’ 인물 중 하나다. 국내에서는 정치적 살해를 당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확산됐지만, 국가정보원은 같은 달 24일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전체회의에서 “김 전 비서가 아직 살아있다”고 밝혔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북한 축구대표팀 감독의 강제노역설에 대한 진상을 조사한 해프닝도 있다. 영국 대중지 더선은 2010년 8월 김정훈 당시 북한 축구대표팀 감독이 같은 해 6월 남아공월드컵 졸전으로 노동당 관계자 400명 앞에서 대표팀 선수들의 비판을 받고 매일 14시간씩 강제 노역 중이라고 보도했다. FIFA는 북한축구협회에 서신을 보내 해명을 요구했고, 강제노역설은 허위로 밝혀졌다.

김영철 부위원장의 숙청설은 허위로 파악됐지만, 그와 함께 처형설이 제기된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 특별대표의 생존 여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근신 중이라는 김 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정치범 수용소 수감설이 불거진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책략실장도 제7차 군인가족예술소조경연장 보도에는 등장하지 않았다. 만약 김 특별대표 등이 이른 시일 안에 공식석상에 등장하면 그의 처형설 역시 북한발 초대형 오보의 하나로 기록될 전망이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