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 한국 축구의 ‘크로스 악몽’ 깨울까

입력 2019-06-03 16:45 수정 2019-06-03 16:56
20세 이하(U-20) 한국 축구대표팀 미드필더 이강인. 대한축구협회 제공

이강인이 한국 축구를 ‘크로스 악몽’에서 깨울까. 이강인의 2019 국제축구연맹(FIFA) 폴란드 20세 이하(U-20) 월드컵 활약상은 이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되기에 충분했다.

U-20 월드컵 도전에 나선 정정용호는 연일 선전하고 있다. ‘죽음의 조’로 평가됐던 조별리그 F조에서 2승1패로 2위에 올라 16강으로 진출했다. 이강인의 맹활약 덕이다. 정정용 한국 U-20 축구대표팀 감독이 이강인의 소속팀 스페인 발렌시아로 찾아가 직접 협의하며 일찍 데리고 온 보람이 있다. 우승 후보로 꼽히던 아르헨티나까지 꺾으며 자신감에 불이 붙었다.

정 감독의 이강인 활용법은 A대표팀에서 참고할 만하다. 파울루 벤투 A대표팀 감독은 FIFA 3월 A매치 데이에서 이강인을 차출했다. 만 18세 20일로 한국 축구 사상 7번째 어린 나이로 성인 대표팀에 선발됐다. 아쉽게 데뷔전은 치를 수 없었다. 이강인은 성인대표팀 첫 경기를 벤치에 앉아 지켜봐야 했다. 벤투 감독은 이강인을 선발한 이유를 훈련과정을 지켜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U-20 대표팀에서는 달랐다. 이강인은 전진 배치되자 날개를 단 듯 맹활약을 펼쳤다. 2대 1로 승리했던 지난 1일 폴란드 티히 경기장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그랬다. 정 감독은 최전방 공격수 오세훈과 함께 이강인을 전진 배치하며 공격적으로 기용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강인의 포지션은 오세훈 아랫선에 위치한 세컨드 스트라이커였지만, 실제로는 포지션에 얽매이지 않았다. 측면, 최전방, 중앙 모두 자유롭게 오가며 공격에 가담할 수 있는 ‘프리롤’을 부여받았다. 가장 선호하는 포지션이던 중앙 미드필더로 나서자 이강인은 펄펄 날았다.

한국 U-20 축구대표팀 공격수 오세훈이 지난 1일 아르헨티나와의 폴란드 U-20 월드컵 경기에서 이강인의 크로스를 받아 득점을 터뜨리고 있다. 뉴시스

이강인의 공격적 재능은 아르헨티나전 득점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반 42분, 오세훈의 헤딩 득점 장면에서 이강인의 날카로운 크로스가 있었다. 이강인이 찬 크로스는 정확하게 오세운 머리 위로 향했다. 후반 11분 터진 조영욱의 득점 역시 이강인이 시발점이 됐다. 중원지역까지 내려와 조영욱에게 볼을 건넸고, 이강인으로부터 볼을 넘겨받은 조영욱이 정호진과 패스를 이어받은 후 추가골을 기록했다.

외신도 이강인의 크로스 능력에 주목했다. 아스와 클라린 등 아르헨티나 언론들은 “이강인의 정확한 크로스가 아르헨티나를 무너뜨렸다”고 촌평하며 그의 크로스 능력에 찬사를 보냈다. 스페인에서 성장기를 보낸 선수답게 좁은 공간을 활용하는 능력과 정확한 킥은 박수를 받기 충분했다. 왼발을 활용한 빠른 방향 전환과 볼을 지켜내는 탈압박으로 상대 수비진들을 괴롭혔다.

측면에서의 크로스 기회를 살리지 못했던 것은 최근 한국 축구가 지니고 있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지난 국제대회였던 2018 러시아월드컵과 2019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시안컵에서 부실한 크로스가 연이어 발목을 잡았다. 크로스 성공률이 미흡하다 보니 제공권에 강점을 보이는 장신의 선수가 있다 해도 제대로 활용하기 힘들었다.

크로스 공격의 개선은 지금의 벤투호도 지닌 숙제다. 이번 U-20 월드컵을 통해 이강인이 그 해답을 제시했다. 곧 2022 카타르월드컵의 본선 진출권을 따내기 위한 아시아 지역 예선이 시작된다. 많은 아시아 팀들은 한국을 상대로 객관적인 전력 차이를 인정하고 중앙 밀집 형태의 수비로 나선다. 지역 방어를 하며 중앙에서 슛할 공간을 주지 않기 위해 육탄방어를 펼친다. 밀집 수비가 거센 팀을 상대로 중앙에서 짧은 패스로 공격을 풀어가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진다. 크로스 숫자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강인의 크로스 능력에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