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의 한 펜션에서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유기한 혐의를 받는 고모(36)씨가 살인 사실만 자백할 뿐 사건 내용 일체를 함구하고 있어 수사가 난항이다. 범행 동기는 양육 분쟁으로 좁혀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시신유기 장소나 과정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잔혹한 살해방법, 살해동기는?
유족의 진술 등 지금까지 드러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 다툼 내용을 보면 살해 동기는 아이 문제로 추정된다. 제주 동부경찰서에 따르면 고씨와 전 남편인 피해자 강모(36)씨 사이에는 아들(6)이 한 명 있다. 이들은 재작년 성격차이로 협의 이혼했고, 아들은 고씨의 친정인 제주에서 생활했다. 이후 고씨는 새로운 가정을 꾸려 충북 청주로 거주지를 옮겼다.
이혼 후 고씨는 강씨에게 아들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강씨는 지속적으로 아들의 면접교섭권을 주장했으나 거부당하자 가사소송을 제기했다. 지난달 초 법원은 강씨의 손을 들어줬고, 이혼 2년만에 한 달에 두 번씩 아이를 볼 수 있게 됐다. 이 과정에서 고씨와 강씨의 골은 더 깊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소송 당시 고씨가 재판에 3차례 불출석하는 등 협조적이지 않았고, 재판 진행 중에도 고성을 지르며 강씨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강씨는 아들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제주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별다른 소득이 없는 상황에서도 아르바이트 등으로 매달 40만원씩 양육비를 부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강씨가 살해된 지난달 25일은 2년 만에 아들을 보러 제주에 도착한 날이었다. 이날 오전 서귀포시 한 테마파크에서 아들과 만난 뒤 전 부인 고씨와 함께 제주시 한 펜션으로 이동했다가 살해됐다. 아직까지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고씨가 아이 문제로 앙심을 품고 범행을 사전에 계획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또 다른 범행 동기가 있을 가능성도 역시 열어놓고 있다.
범행 과정 살펴보니
고씨의 사건 당일 동선을 살펴보니 살인을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 정황이 포착됐다. 고씨와 강씨는 당초 펜션에서 만나기로 약속된 것은 아니었다. 고씨가 사전에 협의 없이 펜션을 예약했다. 무인 펜션이었다.
이곳에서 범행이 이뤄졌고, 고씨는 이틀간 시신과 함께 머물렀다. 입실 사흘째인 지난달 27일 펜션 인근 CCTV를 살펴보면, 고씨는 여행용 가방을 혼자서 자신의 그랜저 차량에 실었다. 그는 이튿날 완도행 여객선을 이용해 청주시로 떠났다. 강씨의 모습은 확인되지 않았다. 고씨가 강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뒤 여행용 가방에 담아 차에 싣고 달아났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고씨는 육지로 돌아가서도 자신의 집이 있는 청주로 곧장 향하지 않고, 여러 지역을 떠돌다 지난달 31일 오전에 청주로 갔다. 경찰은 이때 시신이 유기됐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범죄 뒷수습을 위해 사전에 상황을 정리한 정황도 확인됐다. 강씨는 모닝 차량을 몰고 왔지만 고씨는 이 차량을 제주시 한 마트 주차장에 그대로 세워두도록 하고 자신이 청주에서 끌고온 그랜저 차량에 태운 뒤 펜션으로 함께 이동했다. 시신 유기 계획을 미리 세워뒀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시신 훼손 짐작케 하는 ‘루미놀 반응’
강씨의 시신이 훼손됐을 여러 정황이 확보됐다. 경찰은 지난달 31일 사건현장에 대대적인 루미놀 검사를 진행했다. 시약을 이용해 혈흔을 찾는 검사다. 그 결과 욕실, 거실, 부엌 등에서 강씨의 혈흔이 다량으로 발견됐다. 천장에는 흉기를 휘두를 때 주로 보이는 형태의 혈흔이 확인됐다. 또 욕실에서 특히 많은 혈흔이 발견됐다. 시신을 훼손했다면 욕실에서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씨는 톱 등을 이용해 강씨의 시신을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 고씨의 자택과 차량에서 살인 및 훼손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흉기가 지난달 31일 경찰 압수수색을 통해 발견됐다. 아울러 고씨의 손에는 자상이 남아있다. 체포 당시 그는 오른 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경찰은 이 역시 살인 및 훼손 과정에서 얻은 상처인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고씨의 단독범행일 가능성과 공범이 있을 여지를 모두 열어두고 수사하고 있다.
고씨는 지난 1일 청주에서 긴급체포됐다. 경찰은 고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해 3일 오후 제주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영장 실질심사가 진행된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