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웸블리 공연 리뷰] 팝의 본고장에서 새 역사를 쓰다

입력 2019-06-02 11:52 수정 2019-06-02 12:44

깜깜한 밤 6만 여개 좌석에서 응원봉 ‘아미밤’이 별처럼 빛났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둠을 밝혀주는 별 하나였는데 그들은 은하수를 통째로 가져다주었다. ‘21세기의 비틀스’라 불리는 방탄소년단(BTS). 그들이 한국 가수 최초로 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 무대에 ‘러브 유어셀프: 스피크 유어 셀프’ 유럽 투어의 포문을 열었다. 팝의 본 고장에서 새 역사를 쓰는 순간이었다. 6년 전 데뷔 앨범을 내며 아무도 좋아해주지 않으면 어떡할까 걱정했던 일곱 소년은 이제 전 세계 팬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슈퍼스타가 됐다.


1923년 대영제국 박람회를 위해 세워진 웸블리는 48년 런던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이 열린 역사적인 장소다. 축구 팬에게는 ‘축구의 성지’로 통하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이곳은 많은 팝 스타들의 기념비적인 공연이 열린 장소로 각인돼 있다. 그동안 웸블리에서는 비틀스, 마이클 잭슨, 오아시스, 에미넘, 에드 시런, 비욘세 등 쟁쟁한 뮤지션들이 콘서트를 열었었다. 밴드 오아시스 출신인 노엘 갤러거는 최근 한국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의 보이밴드가 웸블리에서 한국어로 노래를 부른다니 믿을 수 없다”며 놀라워했다. BTS는 한국어 노래를 불렀고, 좌석을 가득 메운 유럽 관객들은 한국어 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부르고 한국어로 된 구호를 외쳤다.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방탄소년단이 팝의 주류 시장에 안착했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준 공연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웸블리는 슈퍼스타들이 설 수 있는 무대”라며 “영국인들은 이번 공연을 통해 BTS가 자국이 배출한 팝스타들과 어깨를 견줄 만한 위치에 올라섰다는 점을 느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BTS는 이날 압도적인 퍼포먼스 속에도 흔들림 없는 라이브 무대로 실력을 입증했다. 영국식 액센트를 강조한 재치 있는 인사로도 관객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시작부터 강렬했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 신전을 재현한 세트를 배경으로 ‘디오니소스’를 부르며 등장했다. 이어 ‘낫 투데이’ ‘아이돌’ ‘페이크 러브’ 등 히트곡을 열창했다. 일곱 명의 솔로와 유닛 무대까지 30여곡을 모두 라이브로 소화하며 다채로운 공연을 선사했다. 또 국내외 차트에서 신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는 새 앨범 ‘ 맵 오브 더 소울: 페르소나’의 타이틀곡 ‘작은 것을 위한 시’와 수록곡 ‘메이크 잇 러브’ ‘소우주’ 등의 무대도 펼쳤다.

공연에 앞서 가진 글로벌 기자회견에서 방탄소년든은 “언젠가 꼭 서고 싶다고 다짐했던 이곳에서 또 하나의 꿈이 이뤄졌다. 웸블리에서 전 세계 팬들과 함께 공연을 즐길 수 있어 가슴 벅차고 행복하다. 아미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여러분과 함께 만든 이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들은 공연 중간중간 “우리가 드디어 웸블리에 왔다” “오늘을 절대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라는 말로 큰 의미를 부여했다. 팬들도 공연 후반부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 ‘힘들 땐 우리가 함께 걸어온 길을 돌아봐’라는 문구를 새긴 슬로건을 6만명이 동시에 드는 순간, BTS와 아미는 하나가 됐다.

한편 이날 공연은 네이버 V라이브를 통해 전 세계 생중계 됐으며, 일본에서는 300여개 극장에서 시차를 두고 상영됐다. BTS는 2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관객을 만난다.

웸블리(런던)=한승주 기자, 박지훈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