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물도 못 넘겼던 생존자들…“살아남은 죄책감에 고통”

입력 2019-06-02 06:29 수정 2019-06-02 16:46
지난 30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다뉴브 강에서 한국인 실종자 수색 작업이 진행된 가운데 한 여성이 사고 지점 바로 위 머르기트 다리에서 추모의 의미가 담긴 꽃 한 송이를 떨어트리고 있다. 뉴시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 사고에서 생존한 7명 중 6명은 사고 이튿날인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병원에서 퇴원한 뒤 모두 한 공간에 모여 시간을 보냈다.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들을 돌본 건 부다페스트 한인교회의 문창석(64) 목사와 현지 교인들이었다. 문 목사는 31일에도 숙소를 옮기는 생존자들을 도왔다. 김선구 선교사의 사모, 김 선교사의 두 딸은 문 목사보다 더 오랜 시간 생존자들의 곁을 지켰다. 31일 저녁 국민일보와 만난 그는 “하루 이틀만에 마무리 될 사고가 아닌 만큼 생존자들이 정신적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나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가장 큰 고통이라고 하시더군요. 생존한 분들의 아픔과 그들이 떠안은 숙제를 외면하지 않길 바랍니다.”

두 차례에 걸쳐 생존자들을 장시간 만난 문 목사는 이들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와 사고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퇴원 당일 대다수 생존자는 음식은 물론 물도 마시지 못했다고 한다. 문 목사는 “한 분이 저에게 기도해달라고 부탁해서 종교에 상관없이 다 함께 슬픔과 고통을 토해냈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안정을 찾았지만 31일에도 한 생존자는 ‘물이 무서워 샤워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문 목사는 생존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사고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전해들었다. 그는 이번 사고를 명백한 인재(人災)라고 봤다. 당시 비가 많이 내린 건 사실이지만 날씨의 영향으로 사고가 났다면 이미 과거에도 수차례 사고가 났을 거란 얘기다.

문 목사는 “생존자들 증언에 의하면 당시 배는 완전히 속도를 줄이고 거의 멈춰섰다고 볼 정도로 천천히 갔다”며 “한국인들이 탑승한 배가 방향을 바꿨다는 추측은 터무니 없는 이야기”라고 했다. 특히 배 후미에 있었던 생존자 A씨는 “크루즈선이 배를 향해 다가왔고 ‘쾅’하는 큰 소리가 아니라 ‘콩, 콩’ 하고 두 차례 소리가 나더니 순식간에 배가 뒤집혔다”고 몇 차례나 되풀이해 말했다고 한다.

A씨는 또 다른 생존자 B씨와 같은 구명튜브를 잡고 구조됐다. 물에 빠진 B씨를 발견하고 A씨가 자신이 잡고 있던 구명튜브를 던졌다고 한다. 문 목사는 “B씨가 의식을 잃기 직전 ‘붙잡아!’라는 외침을 듣고 이성을 찾았다고 했다”며 “튜브를 붙잡고 나서도 A씨가 ‘정신 차려라’ ‘발로 헤엄치라’고 소리쳐 두 사람이 함께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생존자들을 괴롭히는 건 사고에 대한 충격보다도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었다. 일부 생존자들은 타박상이 심한 상태임에도 약을 바르지 않고 방치하고 있다고 문 목사는 전했다. 남동생을 잃은 A씨는 한국에서 가족들이 오고 있다는 소식에도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고 한다.

문 목사는 “A씨의 남동생은 사고가 나기 전 배 안에서 ‘이 부다페스트 야경을 보기 위해 여행을 온 거야. 눈물나게 행복해’라고 말했다고 했다”며 “A씨가 가족들에게 뭐라고 얘기해야할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눈에 보여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이런 사고가 나면 수색 작업에 점점 초점이 맞춰지고 생존자들의 고통은 소외된다”며 “살아남은 분들의 마음을 돌보는 일에도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외교부는 한국시간으로 1일 여성가족부 가족전문상담사 4명과 관계관 1명 등 5명을 추가 파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2일 오전 8시(현지시간) 부다페스트에 도착할 예정이다.

부다페스트=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