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리버풀이 토트넘 홋스퍼를 꺾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구단 역사상 6번째 우승이다. 2일 새벽 4시(한국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의 에스타디오 메트로폴리타노에서 맞붙었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토트넘을 2대 0으로 꺾었다.
토트넘이 자랑하는 ‘DESK’ 라인이 완전가동됐다. 부상으로 한동안 전력에서 이탈했던 해리 케인과 그의 부재를 완벽하게 매웠던 손흥민이 선발로 출격했다. 준결승전에서 맹활약을 펼쳤던 루카스 모우라는 선발에서 제외됐다.
경기를 앞두고 토트넘 선수들의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리버풀 선수들은 지난 시즌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랐지만, 토트넘 선수들은 달랐다. 선수단 모두 챔피언스리그 결승은 경력상 처음이다. 심호흡하며 킥오프 전 몸을 푸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결승전인 만큼 양 팀 모두 최정예 선수들로 경기에 나섰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트넘 감독은 손흥민과 델레 알리를 4-2-3-1 포메이션의 좌우 날개로 기용했다. 중원에는 크리스티안 에릭센, 무사 시소코, 해리 윙크스가 배치됐다. 얀 베르통언, 토비 알더베이럴트, 키에런 트리피어, 대니 로즈가 포백 수비를 맡았다. 골문은 주장 위고 요리스가 지킨다.
이에 맞서는 리버풀은 평소와 큰 차이가 없는 선발진을 들고 나왔다. 호베르투 피르미누, 사디오 마네, 모하메드 살라가 삼각편대에 섰다. 미드필더는 조르지니오 바이날둠, 조던 헨더슨, 파비뉴가 선발로 나서고 앤드류 로버트슨, 조엘 마팁, 버질 반다이크, 알렉산더 아놀드가 수비진을 구축했다. 골키퍼 장갑은 알리송 베커가 꼈다.
◆ 전반전 : 30초 만에 PK 실점 토트넘, 소극적인 양 팀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린 후 관중들의 함성이 사그라들기도 전에 승부의 변수가 발생했다. 주심은 시작 30초 만에 사디오 마네가 볼을 올리는 과정에서 무사 시소코의 팔을 스쳤다고 판정했다. 곧바로 페널티킥을 선언했고, 키커로 나선 모하메드 살라는 오른쪽 구석으로 강하게 차며 깔끔하게 성공시켰다. 예상보다 빠르게 실점을 내주며 포체티노 감독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게 됐다.
실점한 토트넘이 라인을 끌어 올려 거센 반격을 시작했다. 측면으로 전개되는 역습보다는 점유율 중심의 운영을 펼쳤다. 리버풀은 급해진 토트넘의 심리를 이용했다. 강한 압박을 통해 중앙을 거쳐 짧게 올라가는 평소 스타일을 유지하되, 전방에 선 마네와 살라에게 곧바로 긴 패스를 시도하기도 했다. 리버풀의 양측 윙백으로 출전한 로버트슨과 아놀드는 과감한 전진을 자제했다. 케인과 손흥민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데 집중했다.
에릭센과 알리, 손흥민으로 이어지는 토트넘 2선 공격진들의 합이 좀처럼 맞지 않았다. 공격 기회를 잡았을 때 조직력이 무뎌지는 모습이 수차례 연출됐다. 리버풀은 수비 시에 4-5-1 형태로 전환하며 중원을 두껍게 했다. 좀처럼 중원에서의 틈을 내주지 않았다.
토트넘은 틈을 찾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신중하게 공격을 전개해 내갔다. 수비 시에는 시소코가 센터백 사이로 내려와 빌드업을 도와주는 모습이었다. 이는 리버풀도 마찬가지였다. 수비 밸런스에 집중하며 조심스럽게 경기를 펼쳤다. 아놀드와 로버트슨의 소극적인 움직임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양 팀 모두 과감한 전진을 자제하며 수비진영 구축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토트넘에 많은 숙제를 안겨준 전반전이었다. 51일 만에 선발로 나선 케인의 영향력은 예전 같지 않았고, 2선 공격진들의 연계 역시 좋지 않았다. 분위기 반전을 위해 포체티노 감독은 전술적 변화가 절실해졌다.
◆ 후반전 : 오리기의 쐐기골… 토트넘, 두번의 기적은 없었다
시작과 함께 토트넘이 전술적 변화를 보였다. 손흥민이 오른쪽 측면으로, 알리가 왼쪽 측면으로 자리를 뒤바꿨다. 다소 무뎠던 전반전 공격의 흐름을 뒤바꾸겠다는 계산이었다. 리버풀은 전반전과 비슷한 전술 기조를 이어나갔다. 수비에 집중하며 추가골을 노리고자 했다.
점유율을 잡은 토트넘의 두드리기가 계속됐다. 리버풀은 볼 소유권을 포기한 채 측면으로 전환되는 역습을 노렸다. 양측 윙백들의 준수한 크로스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토트넘은 잇따라 세트피스 기회를 잡으며 득점을 노렸다. 에릭센이 후반 15분 중거리 슛을 시도하는 등 과감한 공격도 시작됐다. 측면 수비수인 로즈와 트리피어가 점차 올라가기 시작했다.
포체티노 감독이 후반 20분 첫 교체카드를 꺼내 들었다. 윙크스를 제외하고 모우라를 투입했다. 모우라가 정제된 공격 흐름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길 기대했다. 에릭센은 좀 더 위치를 내려 중원 장악에 집중했다. 시소코가 중앙과 오른쪽 사이 공간을 전담하게 되면서 에릭센의 할당량이 많아지게 됐다.
토트넘에 가슴 철렁한 순간이 찾아왔다. 후반 23분, 역습상황에서 마네가 빠르게 치고 올라가 교체 투입된 제임스 밀너에게 볼을 전달했다. 밀너의 낮에 깔아 차는 중거리 슛은 골대 옆을 살짝 스쳐 지나갔다. 유효 슛이 됐다면 요리스 골키퍼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의 속도와 궤적이었다. 밀너의 노련함과 살라의 역동성이 돋보였다.
손흥민의 분투가 시작됐다. 후반 30분, 역습 기회에서 공을 받아내 곧바로 질주해 일대일 기회를 노렸다. 상대 미드필더들을 당황하게 할 정도의 빠른 속도였으나 반다이크가 안정적으로 막아냈다. 후반 35분, 매서운 오른발 슛으로 골망을 노리기도 했다.
리버풀의 쐐기골이 터졌다. 후반 42분, 세트피스 이후 세컨드 볼 상황에서 교체투입 된 디보그 오리기가 낮게 깔아 차며 득점을 기록했다. 공격이 매끄럽게 되지 않던 상황에서 흐름을 완벽하게 가져오는 득점이었다. 리버풀은 이후 펼쳐진 토트넘의 파상공세를 안정적으로 막아내며 승리를 거두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