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율 100%에 이르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African Swine Fever)이 북한지역에 발생함에 따라 정부가 선제적 방역조치에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3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긴급 방역상황점검회의를 갖고 북한 접경지역 10개 시군을 특별관리지역으로 정하고 위기경보 '심각' 단계에 준하는 방역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심각' 단계는 실제 국내 발생시에 발령하는 위기경보이나 긴급성을 고려해 관련 조치를 내렸다는 것이 정부 당국의 설명이다. 북한에서 발생한 ASF가 야생맷돼지를 통해 남하할 가능성에 대비한 조치다.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된 10개 시군은 강화군·옹진군·김포시·파주시·연천군·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고성군이다. 당국은 농식품부와 검역본부, 지방자치단체와 합동으로 일제 점검에 들어간다. 주요 도로에 통제초소와 소독시설을 설치하고 축산차량에 대한 방역을 실시한다. 이곳에 소재한 353개 농가에 대해서는 ASF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혈청 검사를 진행한다. 남북 출입국사무소 등 북한을 오가는 차량과 인력에 대한 소독도 강화한다. 양돈농가에 야생맷돼지의 출입을 차단하기 위해 포획틀과 울타리를 설치한다. 당국은 국내 유입에 따른 살처분 조치도 미리 준비하기로 했다.
통일부도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통일부는 지난 31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ASF 확산 방지를 위한 납북 협력에 나설 의사가 있음을 북측에 전달했다. 이에 북한은 내부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지난달 30일 돼지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ASF 발생 사실을 공식 보고했다. OIE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북한 자강도 우시군 소재 북상협동농장에서 ASF 의심 증상이 신고돼 25일 확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농장에서 기르는 돼지 99마리 중 폐사한 77마리 외 22마리는 살처분됐다.
북한은 지난달 31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ASF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기사를 게재했지만 아직 대중들에게 자국 내 발병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움직임은 가뭄에 따른 극심한 식량난에 치사율 100%의 가축전염병까지 발생한 것까지 알려지면 자칫 정권에 부담이 커질 가능성에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북한 내 올해 136만t의 곡물 부족이 예상되면서 인구의 40%에 달하는 1000만여명이 식량 부족을 겪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여기에 최악의 봄가뭄이 겹치면서 향후 식량 사정도 순탄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되는 형편이다.
하정호 기자, 사진=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31일 경기도 포천시 소독시설 등을 방문해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 상황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 농식품부 제공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