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이 글로벌 조선업계 1위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첫걸음을 뗐다. 31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법인분할 승인 안건이 통과돼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큰 산을 넘었다. 대우조선해양 실사를 끝내고 국내외 기업결합심사를 통과하게 되면 글로벌 수주 점유율 21%가 넘는 초대형 조선업체가 탄생하게 된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는 10년 넘게 방치한 조선업 구조조정 문제 해결의 ‘화룡점정’과도 같다. 조선산업 침체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국내 업체 간 저가수주 경쟁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 문제이기 때문이다.
조선산업 생태계 자체가 대형 조선소를 중심으로 한 하청생산 구조라는 점에서도 이번 인수 문제는 중요하다. 다만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받아야 하는 기업결합심사가 원활히 통과될지 여부, 노조의 반발, 불확실한 향후 수익성 문제 등 인수건의 성패를 좌우할 여러 변수가 남아있어 최종 결과가 어찌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조선업 ‘구조조정 폭탄돌리기’ 끝낼까
2000년대 중반 글로벌 1위로 올라선 한국 조선업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위기를 맞게 된다. 2010년 들어 선박 발주가격은 이전 대비 30% 이상 폭락했고, 대형 조선소들의 저가수주 경쟁과 선박 발주물량 감소 등이 이어지면서 조선업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유가 시기에 국내 조선사들이 잔뜩 받아온 해양플랜트와 드릴십 물량은 저유가 시대로 접어들면서 줄줄이 발주가 취소되거나 인도가 지연돼 2010년대 중반 ‘조선소 빅3’(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의 실적에 돌이키기 어려운 타격을 줬다.
대형조선소가 많게는 조 단위의 적자를 내면서 하청관계에 있던 중·소조선사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조선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정부는 그때마다 혈세를 쏟아부어 위기를 넘기는 땜질식 처방을 내렸다. 대우조선만 해도 2015년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4조원이 넘는 혈세가 투입됐지만 결국 현대중공업이 인수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하는 방식의 구조조정 방안이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2016년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발주로 맥킨지가 만든 조선산업 컨설팅 보고서에서 이미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의 양대 조선소 구조로 개편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당시 대우조선과 시민사회 반발이 이어지면서 실행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다. 정부의 지원책도 다 소진됐다. 정부는 2016년 10월에 대형 조선소를 위한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내놓았고, 지난해 4월과 11월에는 각각 중형 조선소와 중·소조선사를 위한 대책을 추가로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발표 당시 정부는 “더이상의 대책은 (당분간)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는 조선업 구조조정 문제 해결을 위해 현실적으로 시도해 볼 수 있는 유일한 ‘카드’인 셈이다.
인수작업 완료까지도 ‘첩첩산중’
인수작업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현대중공업지주는 ‘한국조선해양’이라는 중간지주사를 통해 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과 대우조선해양을 거느리게 된다. 한국산업은행은 현재 보유 중인 대우조선해양 주식을 조선중간지주에 현물출자한 후 그 대가로 조선중간지주의 신주를 취득하게 된다.
주총을 통해 이같은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작업이 가시권에 들어왔지만 인수 작업이 완료되려면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3월 보고서에서 “(인수) 거래를 완료하려면 국내 공정거래위원회뿐 아니라 해외 관련 국가들의 공정거래 당국 승인 역시 필요하다”며 “만약 국내외 관련 국가 중 1곳에서라도 기업결합승인을 받지 못하는 경우 본(인수)계약은 해제되며, 인수는 무산된다”고 전망했다.
조선업계에서는 국내에선 조선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감안할 때 공정위의 심사가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국내 조선업의 최대 경쟁국인 중국을 비롯해 일본, 유럽연합(EU) 등 해외국가의 심사다.
중국만 해도 ‘조선업 굴기’를 내걸고 국가 차원에서 조선업을 확대하고 있어 인수 허가를 내줄지 불투명하다. 일본과는 양국 간 외교 관계 악화와 더불어 이미 수산물 수출입 문제로 양국이 무역분쟁을 겪고 있어 결과를 낙관하기 어렵다. EU의 경우 최근 “철도 부분의 경쟁 제한과 가격 상승이 우려된다”며 지멘스와 알스톰의 합병을 반대한 바 있다.
일각에선 기업결합심사 문제가 해결되는 데까지만 1년가량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국내에서는 노조의 반대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이날 현대중공업의 주총은 노조가 당초 예정됐던 주총장을 점거한 바람에 주총 개최를 30여분 앞둔 시점에 부랴부랴 장소를 옮겨서 개최했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 노조와 금속노조 등은 “장소를 옮겨 주총을 열고 안건을 통과시킨 건 불법”이라며 “주총 무효 소송을 낼 방침”이라고 밝혔다. 실제 대법원에선 2013년 씨제이헬로비전 주총 당시 유사한 방식의 주총장소 변경으로 이뤄진 주총에 대해 “무효”라고 판단했었다.
인수가 완료된 후 예상되는 내부 인력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노조와 사측 간 충돌이 예상된다. 현대중공업과 산은 측은 “고용을 최대한 유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중첩되는 사업과 생산설비 등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 인력 감축은 불가피할 것으로 조선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글로벌 선박경기 여전히 침체
6월 중 진행될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실사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대우조선의 경우 단일 수주잔량으론 세계 1위를 기록 중이지만, 일각에선 저가수주 의혹을 제기하고 있어 실사를 통해 새로운 부실 문제가 발견될 수 있다.
난관을 딛고 인수작업이 완료된다 해도 기대했던 구조조정 효과가 나올지는 불확실하다. 조선 부문 분석기관인 ‘클락슨’의 집계를 보면 4월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126만CGT로 3월의 289만CGT에 비해 50% 이상 줄었다. 지난해 LNG선 등의 발주가 일시적으로 늘긴 했지만 여전히 ‘일감’ 자체가 2000년대 중반 호황기의 절반 수준도 안 된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인수가 완료되면 아무래도 한국 기업끼리 저가수주 경쟁을 하는 일은 줄어들게 될 것”이라면서도 “글로벌 선박 경기가 여전히 침체기에 있는 터라 향후 출범할 ‘한국조선해양’이 확실한 수익을 낼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