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금리 인하” 금통위에 소수의견 등장

입력 2019-05-31 14:51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31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은행이 6개월째 기준금리를 현 수준으로 유지했다. 하지만 기준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소수의견’이 등장했다. 한은이 지난해 11월 기준금리를 연 1.75%로 인상한 지 6개월 만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경제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기준금리를 현 상황에서 바꿀 이유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향후 한국의 수출과 투자 등 경기 여건이 쉽게 나아지지 않을 전망이라 한은이 통화정책을 완화 기조로 방향을 선회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31일 전체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1.75%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한국과 미국의 금리 격차는 0.75% 포인트를 계속 유지하게 됐다. 한은은 지난해 11월 기준금리를 1.50%에서 0.25%포인트 인상한 후 1월, 2월, 4월 세 차례에 걸쳐 동결했다.

금리 동결 결정은 시장이 예상했던 결과다. 시장이 주목한 것은 이달 금통위에서 소수의견의 여부였다. 소수의견은 시장의 금리인하 기대감을 키우는 동시에 향후 통화정책 ‘나침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국내외 기관들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는 동시에 한은에 금리인하를 해야 한다고 권고하는 상황이다.

이날 금통위에서는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이 나왔다. 이 총재는 이날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연 1.75%에서 동결한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조동철 위원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고 밝혔다. 조 위원은 금통위 내에서도 대표적으로 통화완화 정책을 선호하는 ‘비둘기파’로 불린다. 조 위원은 지난 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경제가 지나치게 낮은 인플레이션을 우려해야 할 시점에 다다랐다”며 금리 인하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조 위원이 소수의견을 제시하면서 향후 통화정책 기조가 한층 완화적으로 기울어질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과거에도 소수의견이 등장한 후 몇 개월 안에 금리인하 결정이 나왔었기 때문이다. 2014년 7월 정해방 금통위원의 금리 인하 소수의견이 나온 다음 달인 8월 금통위는 금리를 인하했다. 같은 해 9월에도 정 위원이 금리 인하 소수의견을 제시한 후 10월 회의에서 금리를 한 차례 더 낮췄다.

그러나 한은이 곧바로 통화정책 방향을 선회할 가능성은 낮다. 이 총재는 “거시경제와 금융안정을 종합적으로 놓고 통화정책을 운용한다. 현 상황을 종합하자면 지금은 기준금리 인하로 대응할 상황은 아직 아니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한국 경제에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긴 했지만 금리를 바꾸는 일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지난 1분기 성장은 부진했지만 수출과 투자 부진 정도가 완화되고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에 힘입어 성장 흐름이 회복될 것”이라며 “물가도 하반기로 가면서 오름세를 나타내 디플레이션 우려는 과도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추가경정예산(추경)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를 따져보는 게 우선이라는 의미다. 이 총재는 조 위원의 소수의견에 대해 “금통위의 시그널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덧붙였다.

다만 경제 상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은 지속해서 금리인하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금통위도 5월 통화정책 방향 의결문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경로의 하방 위험이 다소 높아진 것으로 판단된다”며 통화정책 기조 변화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뒀다.

한편 금통위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한 차례 더 하향 조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내비쳤다. 금통위는 통화정책 방향 결정문에서 “국내 경제의 성장 흐름은 지난 4월 전망 경로(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2.5%)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미·중 무역분쟁 심화 등으로 전망경로의 불확실성은 높아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미·중 무역분쟁이 장기화할 경우 지난달 전망치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일부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금통위는 향후 세계 경제 상황을 예의주시한다는 방침이다. 금통위는 “미·중 무역분쟁, 주요국의 경기와 통화정책 변화, 신흥시장국 금융·경제 상황, 가계부채 증가세, 지정학적 리스크 등의 전개 상황과 국내 성장 및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