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끝난 후 맞붙었던 선수들은 유니폼 상의를 서로 주고받는다. 상대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시작된 오랜 축구계 관례다. 가지고 싶은 유니폼도 있다. 많은 선수가 현대축구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리오넬 메시와의 유니폼 교환을 꿈꾼다. 가보로 간직하거나 박물관에 기증한다고 할 정도다. 스페인 프로축구에서는 자기가 메시와 유니폼 교환을 하겠다며 같은 편끼리 싸움을 일으켰던 일화도 있다. 그런데 메시와 유니폼 교환을 할 수 있었으나 스스로 이를 포기한 선수가 있다. 잉글랜드 리버풀의 주장 조던 헨더슨이 그 주인공이다.
사연은 이렇다. 리버풀과 바르셀로나의 2018-2019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이 펼쳐질 때였다. 헨더슨은 이날 백업 요원으로 벤치에 대기했으나 전반 24분, 근육 부상을 당한 나비 케이타를 대신해 일찌감치 그라운드를 밟았다. 당시 리버풀은 메시의 움직임을 제어하지 못하며 0대 3 완패를 당했다. 바르셀로나와 리버풀 양 팀 선수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종료 휘슬이 울린 후 평소처럼 유니폼을 교환하며 선수들끼리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유니폼 교환을 하고 싶은 선수가 특별히 없다면 보통 양 팀의 주장끼리 서로의 유니폼을 바꿔 갖는다. 이날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섰던 선수는 메시와 헨더슨이였다. 하지만 헨더슨은 메시가 아닌 루이스 수아레스에게 다가가 유니폼 교환을 요청했다. 많은 선수가 원하는 메시와의 유니폼 교환을 거부한 셈이다.
헨더슨은 그 이유를 28일 영국 데일리메일과의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 그는 프로 경력상 메시와 첫 맞대결을 펼쳤던 그때를 회상했다. “누군가의 셔츠를 달라고 하면 그를 경외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과거 선덜랜드 감독이었던 로이 킨으로부터 배웠다”고 말했다. 리버풀 주장으로서의 품격을 지키기 위해 메시와의 유니폼 교환을 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비록 유니폼 교환은 하지 않았지만 메시를 존경한다는 뜻도 밝혔다. 헨더슨은 “실제로 메시를 상대해보니 TV에서 봤을 때보다 움직임이 훨씬 빨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서 “그가 그때 기록한 프리킥 득점은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솔직히 짧게 끊어찰 줄 알았다”면서 “알리송 베커 골키퍼가 얼마나 잘하느냐 하고는 관계가 없었다. 메시는 알리송이 절대 막을 수 없는 각도로 공을 날렸다”고 말했다.
리버풀은 그 후 홈에서 치른 2차전에서 4대 0으로 승리하며 승부를 뒤집었다. 리버풀에는 기적이었고, 바르셀로나에는 참사였다. 헨더슨은 이날 역시 1차전에 이어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섰다. 풀타임을 누비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주장 대결에서 메시에 판정승을 거둔 셈이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