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록에 각계 업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비단 게임 관련 단체뿐 아니라 일반 IT 협회도 우려를 표명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30일 “디지털 문화의 질병화는 디지털 경제의 쇠퇴화, 게임산업은 인터넷 발전의 상징이자 차세대 디지털 융합 경제의 원동력,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게임이용장애 질병 분류에 반대한다”면서 게임이용장애 질병 분류 결정과 국내 도입 적용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협회는 “그동안 게임이용장애 질병 분류에 대해 비과학적 검증 및 연구 불충분 등 수많은 비판과 세계적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WHO의 성급한 결정이 내려진 점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면서 “WHO 결정에 따른 문화적·경제적 파장은 비단 게임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고, 디지털 경제 전반에 심각한 혼란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게임은 국내 인터넷 산업의 발전을 견인했고 차세대 기술을 이끄는 원동력으로써 디지털 융합 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이미 게임은 무한한 응용 가능성으로 교육, 건강, 광고 등 다양한 영역과 융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게임이용장애 질병 분류 체계가 국내에 도입되어 게임이 의료적 장애 진단의 대상으로 인식될 경우 관련 산업 투자 및 고용 축소, 기술 연구 및 지원 감소, 매출 하락, 산업 규제 강화 등으로 디지털 경제 전반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 확산될 것이다. 이는 게임은 물론 국내 IT기업의 성장을 둔화시켜 글로벌 경쟁력을 심각하게 위축시킬 것이다”고 평가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IT 기업 194개 회원사가 가입된 단체다. 협회는 “과학적 검증 없이 결정된 게임이용장애 질병 분류를 반대한다. 게임의 문화적 사회적 가치에 대한 몰이해로 디지털 콘텐츠 산업 전체를 위협하는 행위를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국게임산업협회도 공식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이들은 “전 세계 게임업계와 수많은 전문가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게임이용장애를 질병 코드로 최종 확정했다”면서 “국제 사회에서 WHO가 발휘하는 영향력은 실로 막대하다. 그렇기 때문에 WHO의 결정은 작은 것 하나라도 명백하게 과학적으로 입증된 근거와 진실에만 기반 해야 하며, 합리적인 사고와 논의 과정을 통해 재차 검증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미 언론을 통해 확인된 바와 같이 일부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적 압력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이로 인해 게임은 제대로 된 평가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정신질환의 원인으로 일방적인 지목을 받게 됐다. 앞으로 활성화될 연구를 통해 근본적인 인과관계를 밝히겠다는 것이 WHO의 입장이나, 이는 현 시점에서 근거가 부족하다는 방증일 뿐이다”고 전했다.
또한 “게임에 몰입하는 수준으로 ‘유병’ 여부를 가늠할 경우 프로게이머들은 중증 정신질환자에 해당한다. WHO를 비롯한 일부 의료계는 직업으로 게임을 하는 프로게이머들은 예외라고 주장하지만, 이 논리대로라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프로게이머 ‘지망생’들은 게임이용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가 된다. 직업이라는, 일종의 ‘사회적인 자격’으로 진단이 나뉘는 질병이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게임산업협회는 보건복지부가 WHO의 의사 결정과 동시에 국내 적용을 준비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에 대해 ‘의구심만 증폭시킨다’고 일갈했다. 협회는 “불명확한 진단 기준이나 여타 질환과의 공존장애 가능성 같은 합당한 문제 제기에 대해서는 눈과 귀를 굳게 닫은 행보이며, 오히려 이번 WHO 결정의 절차적 문제점에 대한 의구심만을 증폭시키는 것이라 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게임은 우리나라 전 국민의 70%가 즐기는 대표적인 콘텐츠이자 여가문화다. 세계적으로는 수십억 명 이상이 지금 이 순간에도 게임을 즐기고 있다. 극히 일부의 이용자들이 남들보다 게임에 집중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이는 게임 그 자체가 아닌, 개인을 둘러싼 주변 환경 요소 및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문제”라고 밝혔다.
이어 “과학적인 근거를 배제한 편향된 절차와 논의만으로는 사회 합의와 공감대 형성에 이를 수 없다. 의학이라는 본인들만의 고유 전문성을 내세워 게임이 정신질환의 원인이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과잉의료화를 통한 ‘질병 만들기’의 행태로서, 문화콘텐츠에 대한 탄압이자 횡포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결정에 한국을 포함한 유럽,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전 세계 게임산업 협회·단체는 결정 재고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게임이 국제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질병코드 등록은 독립된 전문가들의 포괄적이고 투명한 검토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게임의 질병 여부에 대해 의학계에서도 의견이 갈리며 논쟁이 이어졌지만 뚜렷한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