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환자 정신착취” 김현철 처벌 가능성 따져보니

입력 2019-05-30 00:15

유명 정신과 의사가 환자의 전이현상(자신을 진료해주는 정신과 의사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는 현상)을 악용해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루밍 성범죄다. 이는 가해자가 피해자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 길들이고 심리를 지배한 뒤 행하는 성적인 가해행위를 통칭한다.

환자와 의사 사이에 벌어진 일

각종 예능프로그램에 모습을 드러내며 유명세를 얻었던 김현철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이 그루밍 성범죄 의혹에 휩싸였다고 MBC ‘PD수첩’이 28일 보도했다.

한 여성 환자는 “눈을 떠보니 김현철이 내 옆에 누워있었다”며 “날 안고 몸을 만지고 있었다. 만나기만 하면 항상 모텔로 가 성관계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향후 진료에 문제가 생길 것이 두려워 크게 반항하지 못했다. 또 다른 환자는 “진료실 안에서 호텔을 예약한 뒤 그곳에 가있으라고 지시했다”며 “난 그럼 그냥 가서 기다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원장은 자신이 오히려 환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입장이다.


“정신과 의사-환자 관계 사실이면 정신적 갈취”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로 구성된 유튜브 채널 ‘뇌부자들’의 김지용 전문의는 “의사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환자와 성관계를 가졌다면 이는 명백한 정신적 갈취다. 사회적 약자인 정신과 환자를 심리적으로 조종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한 것”이라며 “특히 정신과 의사라면 환자와 도덕적·윤리적 관계를 지켜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폭행과 협박을 필요로 하지 않는 권력관계에서 성폭력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자를 속이거나 가해자에 대한 신뢰를 이용해 항거불능의 상태로 만든다”라고 말했다. 이어 “가해자의 다양한 전략이나 전술에 의해 성폭력이 전개된다”며 “저항 또는 저항의사마저 표할 수 없는 피해자의 취약성을 교묘히 이용하거나 저항과 반항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를 때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루밍 성범죄’ 처벌 가능할까

현행법상 그루밍 성범죄 자체를 처벌할 수는 없다. 심리적 종속상태에서 상대의 동의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특히 성적 자기결정권이 확립된 성인의 경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더 어렵다.

이호진 법률사무소 태동 변호사는 “강간은 기본적으로 폭행과 협박이 수반되는 강제성이 있어야 한다”며 “그루밍 성범죄의 경우에는 상대방의 동의를 얻었고, 물리력 행사 등 강제성이 없었다면 현행법상 처벌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피해자가 13세 미만의 아동이라면 미성년자의제강간에 의거해 동의를 했더라도 처벌할 수 있지만 성인의 경우 혐의 입증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피해자가 그루밍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종속돼있을 경우 사건 이후에도 행동이나 심리 변화가 크지 않아 재판으로 이어지더라도 유죄 판결에 불리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 변호사는 “요즘은 피해자가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고 해도 심신미약이나 상실을 잘 인정해주지 않는다”며 “피해자의 심리적 종속상태를 법에서 규정하는 심신미약으로 인정해 처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피해자가 폭행이나 협박을 당하지 않았더라도 나름의 거부 의사를 표현했고 성관계에 강제성이 있었을 경우에는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하는 추세를 고려해 처벌할 여지는 있다”고 강조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