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봉준호 “칸은 벌써 과거, 이제 관객을 만날 차례”

입력 2019-05-28 18:37 수정 2019-05-28 18:43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참석 당시 봉준호 감독.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칸은 벌써 과거가 됐습니다. 이제 관객 분들을 만나게 됐는데, 한 분 한 분과의 소중한 만남이 기대됩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들고 금의환향한 봉준호 감독은 이미 다음을 내다보고 있었다. 28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기생충’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틈만 나면 약간의 분장을 하고 극장에 가서 티켓을 구매해 정성스럽게 찾아주신 ‘진짜 관객’들의 틈바구니에서 영화를 보고 싶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이야기를 하실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의 일곱 번째 장편 ‘기생충’은 지난 26일 폐막한 제72회 칸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한국영화 역사상 최초의 쾌거로,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환호했다. 출연 배우들로서는 더욱 감회가 남달랐을 터. 칸에서 공식 일정까지만 소화하고 일찍 귀국해 폐막식까지 함께하지 못한 배우들은 한국에서 수상의 기쁨을 함께했다.

이선균은 “새벽에 라이브 방송으로 봤는데 보시는 분들이 많아서 영상이 많이 끊기더라. 더 쫄깃하고 재미있게 봤다. 칸에 있는 것만큼 벅차서 아침까지 잠을 못 자고 캔맥주를 마시면서 자축했다”고, 조여정은 “작품에 출연했다는 것만으로 영광스럽고 이 팀과 만나게 된 인연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했다”고 전했다.

최우식은 “저도 라이브로 봤는데 (수상자 호명 직후) 감독님이 모션을 하시는 모습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처럼 다가왔다. 소름 돋고 인상적이었다”고, 박소담은 “아직도 믿기지 않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감독님, 선배님들과 작업할 수 있어서 영과이었다”고, 장혜진은 “꿈인가 생시인가, 내 생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싶었다. 단톡방에서 서로 축하 메시지를 나눴다”고 했다.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30일 개봉하는 ‘기생충’은 가족 구성원 전원이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글로벌 IT기업을 이끄는 박 사장(이선균)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가족 희비극. 가난한 가족과 부유한 가족의 대조를 통해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를 신랄하게 풍자한다.

봉준호 감독은 “굳이 ‘양극화’라는 경제사회적 용어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가난한 자와 부자는 우리 주변에 늘 있지 않나. 그런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아보고 싶었다”며 “다만 부자와 빈자를 학술적으로 분석하는 영화는 아니다. 풍부한 희로애락을 가진 배우들이 뿜어내는 인간의 여러 모습을 통해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했다”고 소개했다.

각기 다른 색깔을 지닌 캐릭터 간의 앙상블이 돋보인다. 백수 가족의 가장 기택 역을 맡은 송강호는 “‘기생충’은 장르 영화의 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듯 변주된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배우들 모두가 이런 영화를 처음 경험해봤는데, 그런 낯섦이 두렵기도 했지만 신선했다. 관객들에게 어떻게 현실감 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막대한 부를 손에 쥔 박 사장을 연기한 이선균은 “캐릭터 설계가 워낙 잘 돼있었다. 엄청난 부자로 나오는데, 이런 역할을 해보지 않아 처음엔 부담이 되긴 했다. 하지만 감독님이 설정을 잘 잡아주셔서 편하게 작업했다. 특히 첫 촬영이 기억에 남는다. 존경하는 감독님·선배님과 같이 연기하는 첫날, 신인배우로 돌아간 듯한 기분 좋은 떨림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박 사장의 순진한 아내 연교 역을 맡은 조여정은 “돌아가는 상황을 전혀 모르는 채로 전업주부로서의 일에만 몰두하는 캐릭터여서, 기택 가족을 대할 때 (선입견을) 깨끗하게 지우고 그 가족이 하는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다른 역을 할 때는 생각을 많이 해야 했는데 이번엔 달랐다. 그런 부분에서 즐겁게 촬영한 것 같다”고 웃었다.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기택네 장남 기우 역의 최우식과 차녀 기정 역의 박소담은 “가족들끼리 함께하는 장면을 찍을 때 특히 재미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기택의 아내 충숙 역의 장혜진은 “이렇게 큰 작품에서 큰 역할을 한 게 처음이라 긴 호흡을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감독님과 송강호 선배님이 도움을 많이 주셨다. 한 장면 한 장면 신나고 소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뭉클해했다.

가족 단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킨 이유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그것이 출발점이었다”고 얘기했다. 그는 “가난한 4인 가족과 부자 4인 가족이 기묘하게 뒤엉키는 이야기를 그리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우리 삶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가구’인데, 각각의 형편이나 생활은 다르다. 현실과 밀접한 이야기를 펼쳐 보이겠다는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솔직해지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모두가 잘 되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잖아요. 믈 여러 어려움이 많고 쉽지 않죠. 거기서 오는 슬픔, 불안, 두려움도 있을 테고요. 그런 복합적인 마음을 담아보고 싶었어요. 최우식이 부른 노래가 엔딩 부분에 삽입됐는데, 그렇게 꾸역꾸역 살아가는 모습이 이 영화를 통해 젊은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끝으로 송강호는 “우리 영화가 관객들께 ‘영화가 이렇게 진행될 수도 있구나’ 하는 신선한 재미를 드렸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더불어 “극 중 ‘냄새’라는 소재가 중요하게 쓰이는데, 냄새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주관적인 요소다. 그런 것들이 우리 사회에서 우리를 얼마나 가두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사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