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8일, 특성화고 졸업을 앞두고 은성PSD에 취업한 김모(당시 19세)군은 기름때 묻은 장갑과 컵라면, 삼각김밥만을 유품으로 남기고 숨졌다.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홀로 정비하다 달려오는 열차를 피하지 못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내선순환 승강장 스크린도어에서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아직도 많은 이가 김군을, 그의 죽음을 기억하고 있다. 지난 27일 밤과 그의 기일인 28일 오전 구의역 9-4번 승강장에 김군을 추모하는 물결이 일었다. 이곳을 찾은 이들은 잠시 고개를 숙여 묵념하거나, 헌화를 했다. 포스트잇에 하고 싶은 말을 적기도 했다. 이 공간을 사진으로 담으려는 이가 있거나, 열차에서 사람이 내리면 자리를 비켜주며 질서를 지켰다.
남겨진 그의 가방에 먹지 못한 컵라면이 남아있던 것을 가슴아프게 여겼을 한 시민은 샌드위치를 승강장 앞에 내려놓았다. 그 위에 ‘천천히 먹어’라고 적었다. 이후 주스, 우유, 김밥, 과자 등이 줄줄이 놓였다. 밥 먹을 여유조차 없었던 김군은 끼니를 늘 컵라면으로 해결했다고 한다. 식사를 위한 변변한 공간도 없었다.
열악한 방송노동 환경 문제를 제기하다 세상을 떠난 고(故) 이한빛 PD의 아버지도 이곳을 찾았다. 그는 노란색 포스트잇에 “김군 미안해, 너를 추모하던 한빛이랑 잘 지내고 있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우리가 만들게. 잘 있어”라고 적었다.
한 분홍색 포스트잇에는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나와 다르지 않은, 일자리를 걱정하는 청년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전히 일터에서 사람이 죽습니다. 3년이 흘렀지만 무엇이 달라졌나요. 당신을 기억합니다”라고 적혀있다.
이밖에도 “편안히 계시죠, 잊지 않을게요” “책임지는 사회” “모두가 안전한 사회” “더이상 일하다 죽는 노동자가 없길 바랍니다” 같은 수많은 포스트잇이 9-4번 스크린도어에 붙었다.
꼬박 3년 지났지만… 갈 길 멀었다
지난 25일 오후 1시30분 ‘구의역 김군 3주기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구의역 1번 출구 앞에는 흰 국화꽃을 한 송이씩 든 시민이 모였다. 이들은 ‘NO 외주화’ ‘YES 기업처벌’ 같은 문구를 들었다.
김군의 동료들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입을 모았다. 황규선 (25) 은성PSD 노동조합원은 “사고 이후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 업무는 직접 고용으로 바뀌었다”면서도 “하지만 코레일 하청업체 노동자 200여 명은 6월 말 사실상 해고 위기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코레일은 기간제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고 신규 채용 공고문을 냈다. 그는 “정부의 정규직 전환 취지가 기존 숙련공을 몰아내고 신규 채용을 통해 대체하는 것인가”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지난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구의역 3주기 토론회’에서도 남은 과제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갔다. 이들은 산업안전보건법보다 후퇴한 하위법령을 비판했다. 고용노동부는 4월 산안법 하위법령 개정안에 대한 입법을 예고했지만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10여 개 단체는 정부가 발표한 하위법령에는 재발책이 결여돼 있고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실 상황 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해 법 개정 취지를 살리기에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위험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작업 일부만 외주화가 금지됐고, 사망 사고가 많은 기계와 기종에 한정해 원청의 책임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애초 법 개정 취지와는 달리 하위 법령 제정 과정에서 적용 범위가 대폭 줄었다.
정병욱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실제 건설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장비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고려했어야한다”며 “하지만 일부 장비만을 나열해 개정안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시민단체 ‘생명안전 시민넷’ 대표인 김훈 작가는 “정부는 산안법 하위법령을 노동의 현실에 맞게 바꾸어야 한다”며 “국가는 노동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변했다… 동료 살리고 간 김군
김군의 죽음이 가져온 변화도 있다. 은성PSD 직원은 서울교통공사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인력도 상당수 충원돼 2인1조로 작업장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당초 장애가 접수된 후 1시간 안에 현장에 도착해야 한다는 매뉴얼도 삭제됐다. 꼭 열차가 운행되는 시간에 일하지 않아도 된다.
임선재 서울교통공사노조 PSD지회장은 “구의역 사고 이후 서울메트로(현 서울교통공사)의 직영전환을 거쳐 지금은 정규직이 됐다”며 “가장 먼저 느낀 변화는 급여가 아니라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찾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 사각지대’ 권리 찾는 특성화고 학생들
김군 이후에도 특성화고 학생들의 죽음은 계속됐다. 2017년 전북 전주에서 현장실습생 홍수연양이 전화 콜수 압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같은 해 제주도 생수공장에서 일하던 이민호군은 자동 포장 적재기에 끼어 사망했다.
지난해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조가 설립됐고, 현장실습생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은아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조 위원장은 2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사고가 잇따르자 안전을 위해 현장실습을 폐지하겠다고 한다”며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현장실습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학생의 신분만 유지하고 노동자성을 완전 삭제해 버렸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특성화고 학생들은 150만원 정도 수령하면서 실습에 투입됐지만 최근 학습형 실습으로 제도가 변경되면서 20만원 정도를 받는다. 학습형이라고 해도 노동현장에 투입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관리는 제대로 되지 않고, 학생이라는 신분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교통비 정도만 지급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열악해졌다.
그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특성화고 학생과 기업을 직접 연결해주고 관리 감독을 철저하게 이행하는 회사에는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보상하면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영상=최민석 기자 yulli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