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장애 질병코드’는 헌법 침해… 게임중독은 ‘치료보다 관리’

입력 2019-05-28 14:20
한국게임산업협회(K-GAMES)와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긴급토론회’를 공동 개최했다. 서윤경 기자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장애(Gaming Disorder)’ 질병코드 등재는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행동자유와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과잉금지 원칙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게임 유관 단체들은 게임장애가 질병이 아닌 관리의 대상인 만큼 오는 10월 WHO 보건의료분야 표준화 협력센터(FIC) 협의회에서 이를 수정하도록 이의제기에 나서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한국게임산업협회(K-GAMES)와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가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공동 개최한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긴급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게임을 중독의 원인으로 몰아세우는 데는 문제가 있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이 자리에서 임상혁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장은 WHO가 ‘게임장애’를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ICD-11)에 등재하는 것을 확정 지은 것과 관련해 국내에 도입할 경우 5가지의 법적·정책적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임 학회장이 지적한 것은 헌법상의 문화국가원리와의 부조화, 개인의 행동 자유와 자기결정권 침해, 명확성 원칙 침해, 과잉금지원칙 침해, 경제적 자유(영업의 자유) 침해 등이다.

임 회장에 따르면 우선 대한민국 헌법의 경우 문화국가의 원리를 기본원리로 채택하고 있으며 최근 문화국가에서의 문화정책은 국가가 어떤 문화현상에 대해서도 이를 선호하거나 우대하는 경향을 보이지 않는 불편부당의 원칙이 가장 바람직한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놀이 문화로 자리 잡은 ‘게임’도 국가의 개입과 규율을 받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는 것이 임 회장의 주장이다.

그는 “WHO의 의결은 단순한 통계나 건강 상태를 보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정하여야 할 것”이라며 “이를 넘어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질병으로 진단하거나 혹은 이를 위한 증세를 획정하기 위한 것으로 사용되는 것은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WHO가 개인의 행동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가능성도 제기했다. 우리나라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임 학회장은 “일반 국민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어떤 게임을 선택할지, 자신이 선택한 게임에 대해서 얼마의 시간 동안 즐길 것인지, 사회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어느 정도로 설정할 것인지, 자신의 선택에 따르는 기회비용의 포기를 어느 정도 인정할 것인지 등의 문제에 있어서 개인의 선택권 내지 자기결정권을 침해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게임의 과몰입 현상을 ‘중독’이라는 질병의 틀에 넣고 국가의 보호대상이나 후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우리나라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개인의 자유 이념에도 배치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WHO가 치료의 대상이 되는 게임을 디지털게임과 비디오게임으로 한정했음에도 범위가 불분명하고 치료의 대상이 되는 기준 행위도 명확하지 않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임 회장은 “규제 대상이 되는 행동에 대해 게임에 대한 ‘통제력의 손상’이라는 단어 자체의 불명확성은 물론 통제력을 상실하게 된 이유를 오로지 게임으로 발생한 것만으로 한정하고 있지도 않다”며 “WHO 스스로도 결정의 근거가 된 연구들이 한정된 소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행됐음을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적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도 언급했다. 게임산업은 지난해 한국의 전체 콘텐츠 수출액 중 56.6%(75억달러)를 차지하고 이는 대표적인 K컬처 수출상품이다. 이는 K팝으로 대표되는 음악 산업의 8배 이상 큰 수치다. 그러나 이번 ‘게임장애’ 등재로 2023년부터 2025년까지 3년간 11조원이 넘는 경제적 손실이 예상되고 있다.

또 참석자들은 게임중독을 질병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강경석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본부 본부장은 “자녀에게 정신병자 낙인이 찍히길 바라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라며 “일차적으로 자녀가 왜 게임에 과몰입하게 됐는지 가정에서 고민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게임이 마약처럼 근본적으로 중독을 유발하는 물질은 아니다”라면서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진행한 게임 과몰입 실태 조사 결과, 전체 게임 이용자 중 과몰입률은 3% 미만으로 집계됐다”고 말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2000여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게임이용자 패널 연구를 진행한 결과를 보면 게임 과몰입 군으로 분류된 청소년이 일반 군으로 이동하거나 반대로 일반 군에 있던 청소년이 게임과몰입 군으로 이동한 사례는 50% 이상으로 잦았다. 게임 과몰입 군으로 유입된 청소년은 1.4%에 불과했다.

게임 과몰입은 게임 자체의 문제이기보다는 청소년들을 둘러싼 환경의 문제라는 게 강 본부장의 주장이다.

전영순 건국대학교 충주병원 게임과몰입힐링센터 팀장도 강 본부장의 주장에 동의했다. 그는 실제 현장의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청소년들의 게임 과몰입 원인은 게임 자체가 아닌 환경의 문제라고 거들었다.

전 팀장은 “게임 중독을 ‘치료’로 접근하기보다는 ‘관리’적인 측면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현장에서 상담을 진행하면 인터넷 중독이나 스마트폰 중독 증세를 보이는 청소년도 게임과 마찬가지로 가족 내에서 친밀감이 낮거나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않아 다른 쪽으로 몰입했다고 답하는 경향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게임질병코드의 국내 도입을 막기 위해 WHO에 지속적으로 이의제기를 할 계획이다.

최승우 한국게임산업협회 정책국장은 “WHO 총회에서 의결됐어도 WHO 보건의료분야 표준화 협력센터(FIC)를 통해 이의를 제기하면 수정할 수 있다”면서 “또 WHO에 지속해서 반대 의사를 전달하는 한편 한국표준질병·사인 분류체계(KCD)에 도입되지 않도록 보건복지부에 입장을 전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