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팬들은 한화생명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락스 타이거즈 시절부터 중위권 터줏대감인 팀, 공격적이고 바론 버스트를 좋아하는 팀, 초반 기세가 좋지만 뒷심이 부족한 팀 정도로 그들을 떠올리지 않을까.
팀으로서의 컬러는 확실하다. 그러나 구성원 개개인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은 게 많다. 어찌보면 당연하다. 이들에겐 슈퍼스타가 없으며, 지난 몇 년 동안 두드러지게 활약한 낭중지추도 없었다. 일반 팬들은 ‘상윤과 키가 바텀 듀오로 있는 팀’ 정도로 그들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국민일보는 지난 4월 말, 한화생명 선수단의 ‘Break The Limit: 심기일전’ 기획 행사에 동석했다. 그곳에서 총 10인의 한화생명 선수 및 코치진과 일일이 이야기를 나눴다. 당신은 누구이며, 왜 프로게이머가 됐으며, 앞으로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물었다. 한화생명은 선수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담은 기획 영상을 28일부터 31일까지 나흘간 차례로 공개한다.
LCK 팬들에게 한화생명 선수들을 조금 더 자세히 소개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코너를 마련했다. 첫 번째 주자는 김한기와 김기범이다. LCK 팬들에게는 ‘키’와 ‘보노’라는 닉네임이 훨씬 더 친숙하다. 그러나 이번 기사에서는 21살 청년 김한기와 24살 김기범을 소개하고자 한다.
김기범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더 후회 없는 1년을 보내고 싶어요”
‘보노’ 김기범은 24세의 3년 차 프로게이머다. 2017년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승격강등전을 통해 데뷔했다. 동업자들이 대개 고등학생 때 등용문을 거침을 고려한다면, 늦깎이 데뷔를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1995년생인 그와 동갑내기 선수로는 ‘칸’ 김동하, ‘스멥’ 송경호, ‘투신’ 박종익, ‘상윤’ 권상윤 등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프로게이머를 꿈꾸지는 않았다. 학창 시절에는 남들처럼 대학 진학을 목표로 했다. 프로게이머가 되지 않았다면 공무원을 지망했을 것이다. 그는 안정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다. 2017년부터 프로게이머 입문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아프리카TV 멸망전과 대통령배 아마추어 e스포츠 대회(KeG) 등을 통해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조용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탄하기만 한 커리어도 아니었다. 2017년 여름, 때마침 승강전 참가를 앞두고 정글러를 구하던 bbq의 입단 테스트를 통과했다. 승강전에서 안정적인 경기를 펼쳐 팀의 잔류에 이바지했다. 성공적으로 데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듬해 bbq가 ‘트릭’ 김강윤을 영입하면서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다. 설상가상 팀 성적도 좋지 못했다.
데뷔 후 두 번째로 치른 승강전에서 팀이 강등된 후 김기범은 은퇴를 잠시 고민했다. 이렇게 그만두기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만 더 해보자는 생각으로 솔로 랭크 점수를 올렸고, 강현종 감독의 부름에 응했다. 애초부터 해외로 향할 생각은 없었다. 국내에서 한 번 더 도전해보고 싶었다.
검은색 유니폼을 입기 전 그는 한화생명을 유쾌하고 잘하는 팀, 포텐셜(잠재력)이 있는 팀, 바텀 듀오가 중심을 잘 잡아주는 팀으로 평가했다. 그는 주전 정글러로 첫 시즌을 소화했고, 팀은 모두가 알다시피 다시 한번 6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후회가 남았던 스프링 시즌이었다고 김기범은 회상했다. 체력과 멘털 관리가 생각대로 잘 이뤄지지 않았다. 시즌이 후반부로 향하자 피로 누적이 심했다. “한창 시즌을 치를 때는 힘들었는데, 모두 끝나고 나니 ‘조금 더 열심히 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는 고백했다.
“조금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제가 가진 것을 모두 보여드리지 못했어요. 대회 때 기복이 많이 심했고, 그로 인해 팀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예요. 스프링 시즌을 치르며 많이 완화됐지만, 서머 때는 또 어떨지 모르겠어요.”
기복은 한화생명 선수들이 공통으로 꼽는 팀의 약점이다. 김기범은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챔피언 폭이 좁은 편에 속한다. 다들 챔피언 폭을 늘리고, 한마음으로 뭉치자는 마인드가 필요할 것 같다. 또한 기복 없는 플레이를 하고 싶다”고 앞으로의 지향점을 밝혔다.
마우스를 손에서 놨을 때 그는 코인노래방에 가거나, 영화를 보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평범한 청년이다.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은 승부욕이다. 경기에서 지면 화가 난다. 가끔 힘들다 싶으면 혼자서 숙소 근처를 걷는다. 그러다 보면 화가 풀린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더 열심히 준비했을 것 같아요.”
김기범은 시계를 2017년 이전으로 되돌려도 다시 프로게이머의 길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로게이머 생활을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한 걸 후회한다. 입대 전까지는 프로게이머로 살아가고 싶다. 김기범은 이제 병역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나이다. 그렇기에 “이번 한 해를 후회가 남지 않게끔 보내고 싶다”는 각오로 서머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김한기 “베테랑이 되느냐의 갈림길, 올해 서머는 마지막 같은 느낌으로”
김한기는 생각보다 경력이 오래됐다. 올해로 5년 차 프로게이머다. 한화생명의 붙박이 서포터 같은 이미지지만, 사실은 어렸을 때부터 많은 팀의 문을 두들겼다. 그는 고등학생 때 LoL을 처음 접했다. 솔로 랭크 티어가 올라갈수록 게임에 재미가 붙었다. 챌린저를 달성한 뒤에는 자연스럽게 프로게이머 데뷔를 바라봤다.
여러 아마추어 팀을 비롯해 큐빅, 제닉스 등을 잠시 거쳤다. 2015년, 중국으로 넘어가 한 달 동안 에너지 피스메이커 캐리스(EPC)에서 생활했다. 그때 ESC 에버 ‘폴리스’ 박형기와 연이 닿았다. EPC에서 나온 이후 박형기의 제안으로 ESC 에버에 입단했다. 연말 KeSPA컵 우승과 함께 ‘제2의 매드라이프’로 세간에 이름을 알렸다.
처음 ESC 에버에 입단했을 때는 만나는 선수마다 한참 선배였다. 그들로부터 배울 점이 많았다. 이제는 아니다. 그는 신입과 베테랑의 중간에 서 있다. “앞으로 잘한다면 베테랑이 되는 것이고, 여기서 못한다면 애매하게 커리어가 끝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에게 이번 서머 시즌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올해 서머 시즌이 마지막 같은 느낌이어서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한국에서 포스트 시즌에 못 나갔어요. 이번에도 가지 못한다면 내 문제가 심각한 건가 크게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나를 위해서라도 포스트 시즌에 가보고 싶어요.”
지난 스프링 시즌을 또 한 번 6위로 마쳤다. 후회가 막심하다. 김한기는 “시즌이 끝난 뒤에 더 마음 편하게 연습할 수 있었다. 시즌 중에도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면 조금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며 “지금도 컨디션이 좋다. 서머 시즌 개막 때까지 열심히 준비해 이 컨디션을 유지하겠다. 다음 시즌에는 ‘열심히’보다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중반부까지는 괜찮은데, 후반에 힘이 달렸어요. 메타 영향도 많이 받았고요. 시도 때도 없이 주류 챔피언이 변할 때 크게 넘어지는 경향이 있어요. 비시즌 때 모든 챔피언을 연습해놔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이번 서머 시즌 때는 그 연습량이 빛을 발할 거로 생각해요.”
“초반에 흥하면 크게 흥하고, 망하면 크게 망하는 편이에요. 초반에 게임을 그르치지 않게 연습을 더 해야죠. 빨리 달리다가 넘어지는 경우도 있어요. 안정적으로 하되 노련한, 운영을 잘하는 팀으로 이미지를 바꾸고 싶어요. 서머 시즌에는 질 때도 팽팽하게 운영 싸움을 하다 지는, 그런 의미 있는 게임을 하고 싶어요.”
김한기는 한국 나이 27세가 넘어가면 프로게이머 생활을 이어나가기 어려울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샌드박스 게이밍 ‘조커’ 조재읍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30세가 넘어도 프로게이머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졌다. 은퇴 생각은 아직 없다. 최대한 오래 하고 싶다. 그러나 만약 헤드셋을 벗는다면 자신의 이름으로 된 PC방을 하나 차리고 싶다는 소박한 꿈은 있다.
“제 목표는 남들에게 밉보이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을 만큼 평범하게 살아가는 거예요. 살다 보니 갖고자 하면 잃고, 잃고자 하면 갖게 되더라고요. 어렸을 때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게 돼요. 프로게이머는 미래가 보장되는 직업은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열심히 하고 싶어요.”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