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르셀로나가 올 시즌 얻어낸 우승 트로피는 프리메라리가가 전부다. 이달 초만 해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와 스페인 코파 델 레이(국왕컵)에서 막강한 우승 후보로 평가됐으나 모두 탈락했다. 각각 잉글랜드 리버풀과 스페인 발렌시아에 무릎을 꿇었다.
바르셀로나의 막판 부진이 의외라는 시선이 많다. 리버풀과의 1차전에서 3대 0으로 승리했으나 2차전에서는 0대 4로 패했다. 바르셀로나는 발렌시아보다 객관적인 전력상 훨씬 우위에 있다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바르셀로나는 이 점을 살리지 못하고 패했다. 리오넬 메시가 두 골을 터뜨리며 간신히 무승부를 기록했던 지난 19일 에이바르와의 프리메라리가 37라운드 역시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3개 대회 우승이라는 ‘트레블’을 꿈꿨던 기대감이 산산조각난 데 대한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했다. 그래서 지목된 것이 에르네스토 발베르데 감독과 왼쪽 측면 공격수 필리페 쿠티뉴다. 발베르데 감독의 지도력에 의문을 품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21년 여름까지 계약돼 있으나 리버풀과 발렌시아에 당한 패배가 그의 감독 수명을 앞당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바르셀로나 구단은 여전히 발베르데 감독을 신뢰한다는 태도지만, 국왕컵까지 놓친 이상 그를 변호할 명분이 없어졌다. 구단 경영진의 인내심도 한계를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
쿠티뉴는 발베르데 감독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스페인 일간지 ‘마르카’는 리버풀전 패배 이후 쿠티뉴에 대해 “바르셀로나 선수로서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촌평했다. ‘사형선고’라는 대목에서 현지 팬들이 쿠티뉴를 바라보는 시선을 짐작할 수 있다. 바르셀로나가 최근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공격수 앙투안 그리즈만과 연결되며 쿠티뉴가 팀을 떠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왼쪽 측면 공격수 자리에서 오스만 뎀벨레마저도 확실히 밀어내지 못한 상황이다. 그리즈만이 아니더라도 바르셀로나가 왼쪽 측면을 이끌 다른 선수를 영입하면 쿠티뉴의 자리는 사라진다.
문제는 왼쪽 측면… 해결책은
발베르데 감독의 전술적 역량과 쿠티뉴 개인 기량을 이야기하기 전에 더욱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리버풀전, 에이바르전, 발렌시아전 모두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이상 기류가 포착된 지점은 왼쪽 측면이다. 메시와 아르트루 멜루, 세르지 로베르토로 이어지는 오른쪽 공격 라인은 여전히 막강하다. 바르셀로나의 왼쪽 약점은 시즌 중반부터 꾸준히 노출됐다. 메시의 환상적인 활약이 시즌 중반부터 울렸던 경고음을 묻히게 했을지 모른다.
발베르데 감독은 올 시즌 자신의 메인 포메이션으로 4-3-3을 꺼내 들었는데, 이중 정예 요원은 거의 고정적이다. 메시, 루이스 수아레스, 쿠티뉴가 스리톱에 나서며 멜루, 이반 라키티치, 세르히오 부스케츠가 중원을 지킨다. 호르디 알바와 로베트로가 양쪽 윙백으로 나서며 클레망 랑글레와 헤라르드 피케가 중앙 수비로 나선다.
여기서 왼쪽 측면에 직접 가담하는 선수는 3명. 알바, 라키티치, 쿠티뉴가 그들이다. 뎀벨레 또한 쿠티뉴와 번갈아 가며 왼쪽 측면 공격수로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 바르셀로나의 가장 큰 약점은 역습으로 전개될 때 미드필더진들의 수비가담이 빠르지 않다는 것이다. 수비 전환 시에 라키티치가 오른쪽, 쿠티뉴가 왼쪽으로 내려와 급하게 4-4-2 포메이션으로 변경하지만, 커버가 빠르지 않다. 라키티치와 쿠티뉴 모두 주력이 장점인 선수들은 아니다.
올 시즌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한 많은 팀이 이러한 약점을 파고들기 위해 노력했다. 챔피언스리그에서 맞붙었던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양 측면을 넓게 활용하며 강한 전방압박을 수행했고, 폴 포그바가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리버풀 역시 그랬다. 측면 공격수로 나선 모하메드 살라와 사디오 마네가 간격을 최대한 넓게 벌려 서며 공간을 크게 활용했다. 랑글레와 피케를 유인하고자 했던 약속된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발베르데 감독도 이러한 약점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고민을 했다. 고민의 정황은 아르투로 비달의 활용에서 찾아볼 수 있다. 리버풀전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멜루가 아닌 비달을 선발 출전시킨 것은 맨유와의 8강전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1차전 올드 트래포드 원정에서 1대 0으로 승리하긴 했지만, 바르셀로나 공격은 전방위적으로 호흡이 잘 들어맞지 않았다. 발베르데 감독은 이 점을 생각했다. 첫 번째로 고민한 점이 라키티치가 전방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오는 동선과 시간을 없애고자 한 것이다.
비달은 리버풀전에서도, 에이바르전에서도 그러한 고민을 조금은 덜어주었다. 특유의 활동량으로 오른쪽 공백을 메워나갔다. 라키티치는 수비로 전환되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머물던 왼쪽 측면에서 직선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쿠티뉴가 부진했고, 알바 역시 수비적인 실책을 범하며 실점을 내줬다. 발베르데 감독이 꺼낸 비달이라는 나름의 묘수는 이렇게 물거품이 됐다. 여기서 메시의 파트너로 나선 수아레스에게도 전방압박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데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결국 바르셀로나의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왼쪽 측면에서의 공격 전개다. 한쪽 측면이 붕괴되면 포백 수비 앞쪽에서 볼 배급 역할을 맡는 부스케츠 역시 그쪽으로 가담할 수밖에 없다. 부스케츠가 최근 상대 수비수들의 강한 압박을 따라가지 못해 고전했던 이유도 그래서다. 최근 바르셀로나를 상대하는 팀들은 모두 역습 과정에서 부스케츠를 집중적으로 압박하고 나섰다. 바르셀로나의 왼쪽 측면에 대한 약점을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바르셀로나의 여름 이적시장
약점에 대한 첫 번째 해결책으로 투입 요원을 바꾸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공격수 그리즈만 영입설이 나오는 이유다. 발베르데 감독은 국왕컵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협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그리즈만 영입설을 인정했다. 그리즈만이 바르셀로나로 향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지만, 현 시점에서 왼쪽 측면 공격수 영입은 필요해 보인다.
쿠티뉴는 시즌 초 안정적인 활약을 보이며 바르셀로나 리듬에 적응하는 듯하다 들쑥날쑥한 경기력 기복을 겪기 시작했다. 뎀벨레가 좌·우측을 가리지 않고 상대 측면을 흔들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크고 작은 근육 부상으로 오락가락했다. 같은 부상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올 시즌만 3번, 2017년 여름 바르셀로나에 합류한 이후 5번째 햄스트링 부상이다.
어느 한 곳을 커버하기 위해 달려가면 다른 쪽에서 빈 곳이 생겼고, 그곳은 바르셀로나의 위협적인 공격 경로가 됐다. 그러나 쿠티뉴와 뎀벨레는 그러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상대 수비수를 왼쪽으로 돌려놓는 데 실패하다 보니 중앙에 있던 수아레스의 파괴력 역시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네덜란드 야약스 암스테르담에서 활약하는 프랭키 데용의 합류는 왼쪽 측면에서의 막힌 흐름을 어느 정도 뚫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라키티치의 위치를 대체할 가능성이 크다. 후방 빌드업과 탈압박 능력뿐 아니라 빠른 주력까지 갖췄다. 수아레스의 확실한 백업 요원도 필요하다. 결국 왼쪽 측면 라인 전방위적으로 변화가 시급하다는 얘기다.
경기장을 횡적으로 넓게 활용하는 바르셀로나의 전술 특성상 좌우 균형을 맞추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2010년 바르셀로나가 유럽축구의 중심으로 떠오를 시절에도 그랬다. 안드레아스 이니에스타가 중앙 미드필더 왼쪽에 서면서 측면 공격수 위치까지 전진했고, 오른쪽에는 사비 에르난데스가 위치해 볼 배급을 하며 공수 양면을 지원했다.
바르셀로나는 유독 슬픈 5월을 보냈다. 이미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확정했던 상황에서 남은 두 개의 대회를 놓쳤다. 초라한 성적표는 문제를 말해준다. 바르셀로나 수뇌부가 현재의 문제를 타개할 방법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 전광판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송태화 기자가 함성소리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전하는 스포츠 연재입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