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대한민국 영화 역사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봉준호 감독은 25일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라 시상자인 배우 카트린 드뇌브와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건네는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품에 안은 봉준호 감독은 “이런 상황을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불어 소감을 준비하지 못 했다. 불어 연습은 제대로 못 했지만 언제나 프랑스 영화를 보면서 영감을 받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큰 영감을 준 앙리 조루즈 클루조, 클로드 샤브롤 두 분께 감사드린다”고 운을 뗐다.
이어 “‘기생충’이라는 영화는 되게 큰 영화적 모험이었다. 독특하고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 작업을 가능하게 해 준 것은 나와 함께한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있기에 가능했고, 홍경표 촬영감독과 이하준 최세연 김서영 등 모든 아티스트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많은 아티스트들이 실력 발휘를 할 수 있게 해 준 바른손과 CJ에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은 또 “무엇보다도 ‘기생충’은 위대한 배우들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던 영화다. 이 자리에 함께 해준 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나의 동반자인 우리 송강호의 멘트를 꼭 이 자리에서 듣고 싶다”라며 송강호 배우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송강호는 “인내심과 슬기로움과 열정을 가르쳐 주신, 존경하는 대한민국 모든 배우분들께 이 영광을 바친다”고 말했다.
마이크를 다시 전달받은 봉준호 감독은 “가족에게 감사하고, 나는 그냥 12살의 나이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소심하고 어리숙한 영화광이었다. 이 트로피를 이렇게 손에 만지게 될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감사하다”라며 뭉클해했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봉준호 감독은 “한국 최초의 황금종려상인데, 마침 올해가 한국영화 100주년이 되는 해여서, 칸영화제가 한국영화에 의미가 큰 선물을 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기생충’의 만장일치 황금종려상 결정에 대해 “‘기생충’은 무척 유니크한 경험이었다. 우리 심사위원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영화는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다른 여러 개의 장르 속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그리고 한국을 담은 영화지만 동시에 전 지구적으로도 긴급하고 우리 모두의 삶에 연관이 있는 그 무엇을, 효율적인 방식으로 재미있고 웃기게 이야기한다”고 설명했다.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영화제 기간 내내 유력하게 점쳐졌다. 지난 21일 월드 프리미어 상영회를 가진 이후 국내외 언론과 평단 그리고 영화 관계자들의 호평이 쏟아졌다. 봉준호 감독 특유의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연출력과 예측 불허의 상황 설정, 위트 있는 대사, 배우들의 케미스트리가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국내외 언론들은 “봉준호 감독 작품 중 최고의 작품” “현대 사회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담아낸 걸작” “봉준호는 마침내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기생충’은 각국 매체가 발표하는 평점 집계에서 경쟁 부문 진출작 중 최고점을 받기도 했다. 칸영화제 공식 데일리지인 ‘스크린 인터내셔널’은 ‘기생충’에 경쟁작 21편 가운데 최고점인 3.5점(4점 만점)을 부여했다. 20개국 기자와 평론가들로 이뤄진 아이온 시네마도 최고점인 4.1점(5점 만점)을 주는 등 다수 매체에서 최상위 평점을 기록했다.
봉준호 감독은 세계 최고 권위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대한민국 영화 역사에 발자취를 남기게 됐다. 그간 한국영화는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을 시작으로 ‘기생충’을 포함해 총 17편의 작품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었는데, 이 가운데 다섯 편의 작품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2002년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감독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2004년 ‘올드보이’(감독 박찬욱)가 심사위원대상, 2007년 ‘밀양’(이창동)이 여우주연상(전도연), 2009년 ‘박쥐’(박찬욱)가 심사위원상, 2010년 ‘시’(이창동)가 각본상을 받았다. 그리고 ‘기생충’이 마침내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봉준호 감독은 다시 한번 세계가 주목하는 거장 감독으로서의 면모를 입증했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작품은 총 21편. 황금종려상을 한 번 이상 수상한 감독(장 피에르 다르덴 & 뤽 다르덴, 켄 로치, 쿠엔틴 타란티노, 테런스 맬릭, 압델라티프 케시시)의 작품이 무려 5편, 여기에 칸의 총아 자비에 돌란, 거장 마르코 벨로치오까지. 이 같은 치열한 경쟁 속에 얻어낸 결과라 더 값지다는 평가다.
봉준호 감독은 2006년 영화 ‘괴물’이 감독주간에 초청되면서 칸영화제와 첫 인연을 맺었다. 옴니버스 영화 ‘도쿄!’(2008)가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된 데 이어 김혜자 원빈 주연의 ‘마더’(2009)가 ‘주목할 만한 시선’에 다시 초대됐다. 2017년에는 ‘옥자’로 처음 경쟁부문에 올랐고, 2년 만인 올해 ‘기생충’으로 연이어 경쟁부문에 진출, 마침내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
‘기생충’은 전원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고액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이선균)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다. 전 세계 192개국에 선판매되며 역대 한국영화 최다 판매 신기록을 수립했다. 오는 30일 국내 개봉된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