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효자치안센터 앞. 초여름 더위에 모자를 눌러쓴 이들이 강윤택(우리동작장애인자립재활센터 대표)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 대표와 함께 줄지어 섰다.
모두 굳은 표정이었다. 잠시 후 강 대표가 “우리는 시각장애인이다. 시각장애인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엉터리 장애등급제 전면 폐지를 촉구하는 집회를 갖고자 한다”고 밝혔다.
전경 수백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동정 아웃! 권리 보장! 시각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집중 결의대회’는 이렇게 시작됐다.
요구안을 낭독하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동정 꺼져! 권리 보장하라”를 외칠 때는 눈물을 글썽이는 이도 눈에 띄었다.
연대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국민명령 1호인 장애등급제 폐지에는 시각장애인의 욕구가 반영돼 있지 않다.
장애인을 1급부터 6급까지 의료적으로 줄세워 낙인찍는 기존의 등급제를 폐지하고, 개개인의 욕구와 사회적 환경에 따라 판단한다는 목적으로 진행된 장애등급제 폐지는 방향을 잃은 지 오래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활동지원 서비스평가 문항에 있는 ‘옮겨 앉기’ ‘누운 상태에서 자세 바꾸기’ ‘앉은 자세 유지’ ‘배변배뇨’ 등의 항목은 개개인의 욕구와 환경을 반영하기는커녕 장애유형별 특성조차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강 대표는 “정부는 배점 조정의 방식으로 시각장애인의 서비스 양이 소폭(평균 6.33) 증가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는 서비스 탈락시 소량을 보전해 주거나 급격한 하락을 줄이기 위한 구간 확대에 따른 결과로 통계적 속임수에 불과할 뿐 시각장애인의 장애특성을 고려한 결과라고는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아영(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복지위 부위원장)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 공동대표는 “시각장애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이 인정조사 문항을 연구하고 발표한 점, 발표된 인정조사 문항에 따라 시각장애인이 활동지원 서비스를 필요한 만큼 받기 위해서는 장애를 과장하거나 조사원의 호의를 기대해야한다는 점에 시각장애인은 인권 모독과 개인적 굴욕감 또한 느껴야한다”고 했다.
또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가 활동지원제도를 넘어 교통, 의료, 장애인보장구, 이동지원서비스, 고용 및 소득보장 등 장애인복지서비스 전반으로 확대될 때 시각장애인들은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는 지난해 8월 보건복지부에 시각장애인에게 적합한 인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충분한 대안 제시 없이 기다리라는 말로만 일괄하고 있다는 게 연대측의 주장이다.
정 공동대표는 “시각장애인들은 잘못된 제도를 바로 잡고 인간의 권리를 찾기 위해 행동하려고 한다”며 “만약 우리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청와대 시위에 이어, 여·야 정당 당사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연대는 지난 20일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이런 내용의 청원을 올렸고, 현재까지 약 5000명이 청원에 참여했다.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에는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실로암장애인자립생활센터, 종로인명장애인자립생활센터, 한국시각장애인가족협회, 함께하는장애여성인권모임 등 20여개 단체 회원들로 구성돼 있다.
다음은 이날 발표한 성명 전문이다.
<성명>
얼마 전 진주에서 발생한 방화·살인 사건의 희생자 중 한 명이 고3 시각장애인 학생이었다. 이 학생은 한 달 전 부터 가해자에게 위협을 받아 왔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언론은 단지 시각장애를 겪던 학생의 죽음으로만 다룰 뿐, 그 학생이 한 명의 인간으로서 어떤 사람이었는지, 꿈은 무엇이었는지, 시각장애인들이 안전에 있어 얼마나 취약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시각장애인은 그저 눈이 안 보이는 사람에 불가하다.
대한민국의 시각장애인에 대한 소외는 이번 장애 등급제 폐지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문재인 정부 국민명령 1호인 장애 등급제 폐지에는 시각장애인의 욕구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장애인을 1급부터 6급까지 의료적으로 줄 세워 낙인찍는 기존의 등급제를 폐지하고, 개개인의 욕구와 사회적 환경에 따라 판단한다는 목적으로 진행된 장애 등급제 폐지는 방향을 잃은 지 오래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활동지원 서비스 평가 문항에 있는 ‘옮겨 앉기’, ‘누운 상태에서 자세 바꾸기’, ‘앉은 자세 유지’, ‘배변배뇨’ 등의 항목은 개개인의 욕구와 환경을 반영하기는커녕 장애유형별 특성조차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정부는 배점 조정의 방식으로 시각장애인의 서비스 양이 소폭(평균 6.33) 증가하였다고 강조 하고 있지만, 이는 서비스 탈락 시 소량을 보전해 주거나 급격한 하락을 줄이기 위한 구간 확대에 따른 결과로써 통계적 속임수에 불과할 뿐 시각장애인의 장애 특성을 고려한 결과라고는 볼 수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 시각장애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이 인정조사 문항을 연구하고 발표한 점과 더불어 발표된 인정조사 문항에 따라 시각장애인이 활동지원 서비스를 필요한 만큼 받기 위해서는 장애를 과장하거나 조사원의 호의를 기대해야한다는 점에, 시각장애인은 인권 모독과 개인적 굴욕감 또한 느껴야 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가 활동지원제도를 넘어서 교통, 의료, 장애인보장구, 이동지원서비스, 고용 및 소득보장 등 장애인복지서비스 전반으로 확대될 때 시각장애인들은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지난 8월 한국 시각장애인 연합회는 보건복지부에 시각장애인에게 적합한 인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하였지만, 보건복지부는 충분한 대안 제시 없이 기다리라는 말로만 일괄하고 있다.
이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은 잘못된 제도를 바로 잡고 우리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찾기 위해 행동하려고 한다.
우리의 요구안
1. 시각장애인의 복지를 권리로 보장하지 않는 가짜 등급제폐지를 중단하라.
1. 시각장애인의 장애특성과 욕구를 반영한 서비스지원 종합인정조사를 실시하라.
1. 시각장애인에게 연령 제한 없이 충분한 자립생활이 보장되는 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를 보장하라.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