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의 국가정보원 개혁안이 선진 국가정보체계 모형에 부합하지 않는 미흡한 수준이라는 전문가 주장이 제기됐다. 정보기관 권력 분산화 측면에서 허점이 많다는 것이다.
이혜훈 국회 정보위원장과 지상욱 의원, 사단법인 국가정보포럼은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가정보포럼 설립 기념 세미나를 개최했다. ‘정보화시대 국회와 정보기관’이란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는 문희상 국회의장, 국회 정보위 소속 의원, 이석수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등이 참석했다.
전웅 국가정보학회 회장은 ‘한국 국가정보체계의 선진화와 국회의 역할’이란 주제 발표에서 “현 정부가 진행 중인 정보기관 개혁 역시 미흡한 측면이 없지 않다”며 “무엇보다 국정원 등 정보기관이 가진 권력의 분산화가 기대했던 만큼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내정보 부서의 폐지만으로는 국정원이 가진 권력이 분산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전 회장은 “현재 국회에 계류된 국정원법 개정안이 확정된다면 국정원은 이름만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바뀔 뿐, 여전히 단일 정보기관이 정보, 수사, 방첩 등 여러 기능과 권한을 가진 통합형 정보기구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통합형 정보기구 형태는 권력남용의 위험을 수반하게 되며, 나아가 집권세력의 정권 유지를 위한 도구로 손쉽게 이용될 소지가 있다”면서 “현재의 국정원 개혁안은 결코 모범답안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구축된 국가정보체계의 공통된 특성을 ‘분리형 정보기구’로 봤다. 특히 영국의 국내정보기관인 MI5를 한국이 본받아야 할 이상적인 정보기구 모델로 꼽았다. “영국의 국가정보체계는 국내정보 활동과 사법활동을 엄격히 구분하고 있고, MI5는 수사권은 물론 어떤 특권도 없다. 정보기관의 권력기관화를 방지하면서도 합동정보위원회(JIC)와 같은 조직을 구성해 원활한 정보공유와 협력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전 회장은 한국의 경우도 국외정보(한국형 CIA), 국내정보(한국형 FBI), 신호정보(한국형 NSA) 등 분야를 각기 정보기관이 담당하는 분리형 정보기구 체제로 재편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정보포럼 대표인 석재왕 건국대 교수는 ‘한국형 정보공동체 형성과 국회의 역할’을 주제로 발표했다. 석 교수는 초국적 사이버 활동이나 글로벌 안보위협 등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형 정보공동체’ 구축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정보기관은 물론 군·행정기관 내 정보조직들로 구성된 정보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석 교수는 “한국의 정보기관이 대통령으로부터 얼마나 소외돼 있는지는 대통령 직속의 정보위원회나 정보조정 및 통합협의체가 전무하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며 “정보기관이 수집·분석한 결과물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외부 시스템도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가 정보공동체 설립을 위한 방안으로 국가정보위원회 또는 국정원장 산하 정보협의체 신설, 청와대 내 국가정보조정관 직제 도입, 대통령 국가정보자문위원회 신설 등을 들었다. 석 교수는 특히 국회(의장) 산하 국회정보자문위원회 설치, 청와대를 비롯한 정보통제 대상 부처 확대, 정보위원 및 보과진 정보 전문성 향상 등 국회의 정보 통제 역할도 강조했다.
문희상 의장은 행사 축사에서 “전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며 “기존 패러다임으로는 혁명적인 변화에 대응해 나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의 생산, 정보의 관리, 정보의 공급 등 국가정보 시스템을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국가 정보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