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훈 학교법인 안당학원 행정실장의 말이다. 안당학원은 부산 해운대구에 위치한 부산문화여고와 부산국제외고를 운영하고 있다. 정 실장은 두 학교 행정실장을 겸하면서 일선 현장에서 교육을 지원하며 다양한 교육정책을 경험하고 있다.
정 실장이 교육에 몸 담은 것은 부친의 영향이 컸다. 정 실장의 부친(정순택)은 부산문화여고의 전신인 한독여자실업학교를 설립했고, 부산의 초대 민선 교육감을 지낸 부산 교육계 원로다. 정 실장의 부친은 또 국립해사고 교장, 대통령 교육문화수석, 부산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 한국관광정책연구원 초대원장 등을 두루 역임했다. 연로한 부친을 돕고 그 뜻을 이어가려고 정 실장은 학교사업에 뛰어들었다. 학교 업무를 하며 교원자격도 취득했다.
정 실장은 부산 교육계에서는 드물게 독일 유학파 출신이다. 독일에서 경제·경영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엔 독일 현지 LG디스플레이 유럽 법인에서 근무했다. 한국으로 귀국해서는 넥센타이어 전략기획팀에서 다년간 일하며 업계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비즈니스 분야에서 역량이 뛰어났기 때문에 교육계로 향한 정 실장의 소식은 주변을 놀라게 했다.
-안당학원을 소개한다면.
“안당은 설립자이신 부친의 호(號)로 ‘편안하고 안전한 집’이란 뜻이다. 부친의 천주교 세레명인 ‘안토니오’의 한국 호칭이기도 하다. 안당학원은 특성화고인 부산문화여고, 특목고인 부산국제외고를 운영하는 학교법인이다. 독일경제협력성 저개발국지원처의 지원으로 1965년에 부친께서 독일인과 함께 부산문화여고의 전신인 한독여자실업학교를 설립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독일의 도제교육방법과 마이스터식 독일직업교육의 내용을 도입한 것이다. 그동안 여성 직업·기술교육을 50년 넘게 이어온 결과 부산문화여고는 특성화고교로서 가장 우수한 교육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성화고 취업지도 및 진로, 진학에서도 부산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현재 실업·직업교육을 하는 부산지역 특성화고 가운데 롤모델 역할을 하는 명문실업고다.”
-설립자인 부친의 노력이 상당했을 것 같은데.
“부친께서 우리나라 교육계의 최고 위치에서 다양한 교육활동을 하면서 지닌 교육 신념이 있다. 글로벌 경쟁에 필요한 점은 바로 과학·기술교육과 외국어교육을 잘해서 국제사회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창조적이면서 자주적인 능력을 갖춘 인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교육신념을 학교현장에서 철저히 실현하겠다는 열정으로 특성화고인 부산문화여고에서 기술·직업 교육을 했다. 또 우수한 외국어교육을 할 수 있는 특수목적고등학교인 부산국제외국어고등학교를 2003년에 설립했다. 교훈은 ‘창조인·자주인·세계인’, 교육목표는 ‘세계화를 선도할 창의적이고 자주적인 세계인을 육성’이다. 외국어 교육과정에 필요한 인프라를 모두 갖추는 등 개교 10년만에 부산에 최고 시설을 구비한 학교로 발전했다. 여고 문과반만 있고, 재수생이 거의 없는 여건에서도 서울대에 매년 5~6명, 고대와 연대에 30명 이상을 합격시켰다. 성균관대, 서강대, 이화여대 등 서울지역 명문대에도 매년 140명 이상의 합격자를 내 부산의 명문외고로써 손색이 없다고 본다.”
-교육계에 몸담은 계기는 무엇인가.
“평생 교육계에 헌신한 부친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 교육 발전을 위해 노력 하겠다’고 생각 했다. 어린 시절 스스로 뭔가를 이루고 싶다는 생각에 독일 유학을 떠났다. 한국으로 귀국하고 대기업 직원으로 생활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어느 날 부친 얼굴에 주름이 깊어지는 걸 보며 연세가 느껴졌다. 일흔이 넘도록 홀로 고생하시는 부친을 보며 학교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학교 행정실로 들어와서 일을 배우면서, 교육대학원에서 교원자격증도 취득했다. 교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 4년 전부터는 부산국제외고와 부산문화여고 두 학교의 행정실장을 겸임하면서 교육현장을 직접 느끼고 배우고 있다.”
-어린 나이에 홀로 유학생활이 쉽지는 않았을텐데 독일 유학생활은 어땠나.
“어릴 때부터 독일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아 그 나라에 익숙했다. 그래서 스스로 독일 유학을 고집해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자마자 홀로 독일로 떠났다. 초기에는 독일어가 미숙해 많이 고생 했다. 언어를 빨리 배우려고 스포츠를 통해서 친구들을 사귀었다. 고등학교에서 할 수 있는 농구, 배구, 테니스, 배드민턴 등 웬만한 운동은 다 해봤다. 어렵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일의 대입시험인 아비투어(Abitur)를 통해 대학에 입학했다. 경제·경영을 전공했다. 7년을 공부해서 석사과정(디플롬)을 통과하고 100페이지가 넘는 논문을 교수님들로부터 좋은 점수를 받으며 졸업했다. 졸업과 동시에 LG Display 유럽법인에 입사해 우리나라 디스플레이가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을 느끼며 대기업의 조직생활을 경험했다. 당시 독일에 첼로 공부를 위해 유학 온 지금의 와이프를 만났다.”
-우리나라 교육이 가야할 방향을 제시한다면.
“교육은 중립적이어야 한다. 지켜야 할 가치와 변화를 줄 부분을 구분해서 적절한 시점에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교육의 근간은 흔들려선 안 된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은 선진국 방식을 따라가고 있다. 하지만 좋은 제도를 그냥 모방하기보다 우리나라의 현 교육실정에 맞게 옷을 잘 입혀야 한다. 오는 2022년부터 ‘고교학점제’가 도입된다. 독일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학생이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누적학점이 기준에 도달하면 졸업을 인정받는 방식 때문에 ‘학생 선택중심 교육과정’이라고도 한다. 이런 교육제도가 성공하려면 우선 제일 큰 이슈인 대입제도와 고교내신평가제도가 함께 변화하고 개선돼야 한다. 우리나라가 짧은 시간 경제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 사학이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결과로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전체 대학생의 80%, 고등학생의 60%, 중학생의 28%를 길러내고, 우리나라 인재양성의 중요 역할을 하는 사학의 발전 없이는 교육발전을 기대할 수도 없다. 사학 발전을 위해서는 사학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이 필수다. 헌신적인 교직원이 대부분인데도 일부 사학에서 일어난 비리를 전체 사학의 문제로 몰고 가는 현실이 걱정스럽다. 교육의 다양성을 통해 우리의 미래인 학생들이 창의성과 특기를 살릴 진실된 교육을 받도록 부산의 교육과 국내 교육이 나아가길 바란다.”
이은철 기자 dldms878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