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근로자 혈액암 위험 높다” 첫 역학조사 결과

입력 2019-05-22 14:00
반도체 자료사진. 픽사베이

반도체 제조업 근로자들의 혈액암 발생·사망 위험 비율이 높다는 기관 차원의 첫 역학조사 결과가 나왔다.

안전보건공단은 22일 “지난 10년간 추적조사한 결과 반도체 사업장 여성 근로자의 백혈병 발생 위험이 일반대비 1.19배, 다른 업종을 포괄한 전체 근로자대비 1.55배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백혈병 발병으로 인한 사망 위험은 일반대비 1.71배, 근로자대비 2.3배로 조사됐다. 백혈병은 혈액 세포에 발생하는 혈액암의 종류다.

혈액암의 다른 종류인 비호지킨림프종(림프조직 세포의 종양)의 경우 반도체 사업장 여성 근로자의 발생 위험이 일반대비 1.71배, 근로자대비 1.92배로 집계됐다. 사망 위험은 일반대비 2.52배, 근로자대비 3.68배로 높았다.

안전보건공단의 이번 조사 결과는 반도체 공정과 혈액암 발생·사망의 개연성을 처음으로 추적한 기관 차원의 자료로 의미를 갖는다.

안전보건공단은 “2007년 반도체 제조업 근로자들의 백혈병 발생을 계기로 이듬해 이 업종 사업장에 대한 역학조사를 실시했다”며 “부족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2009년부터 2019년까지 암 발생·사망 위험비를 추적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2007년은 경기도 용인 기흥구 소재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했던 고(故) 황유미씨가 급성백혈병으로 사망했던 해다.

역학조사는 반도체 제조업 6개사 전·현직 근로자 약 20만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안전보건공단은 정확한 분석을 위해 집단을 일반과 근로자로 구분했다. 일반은 세대·연령을 구분하지 않는 ‘보통사람’의 집단을 말한다. 근로자는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연령으로 대상이 압축돼 일반보다 건강한 집단으로 볼 수 있다. 특정 업종의 발병률 역학조사에서 근로자대비 통계는 일반대비보다 높게 나타날 수 있지만 더 정확한 지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얘기다.

안전보건공단은 “이번 역학조사에서 반도체 제조업의 20~24세 여성 오퍼레이터의 혈액암의 발생 위험비가 높게 나타났다”며 “유해물질 노출 수준이 지금보다 높았던 2010년 이전 여성 입사자의 혈액암 발생 위험 비율이 높았다”고 설명했다.

안전보건공단은 이번 역학조사를 토대로 반도체 제조업 사업장에서 자율적인 안전·보건 활동이 이뤄지도록 모니터링하고, 전자산업 안전·보건센터를 설립해 협력·중소업체를 포함한 직무별 화학물질 노출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위험 관리 체계를 운영할 계획이다. 역학조사 보고서 전문은 산업안전보건연구원 홈페이지에 게시될 예정이다.

박두용 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은 “이번 역학조사 결과가 국내 반도체 제조업의 암 발생 위험을 관리하고 능동적인 예방 정책을 수립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 업종별 위험군 역학조사를 활성화해 발병 전에 위험을 감지하는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