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프리즈너’(KBS2)는 여러모로 예측불허였다. 시청률 15.8%(닐슨코리아)로 끝맺으며, 최근 지상파 드라마의 부진을 말끔히 씻어냈다. 서사는 반전을 거듭했다. 의료·사법·자본 권력이 뒤엉키는 신선한 스토리와 고가의 아나몰픽 렌즈를 활용한 독특한 영화적 연출도 흥행에 한몫을 했다.
하지만 주인공의 매력을 빼놓고는 흥행 배경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극의 최전선에서 활약한 남궁민(41)은 나이제라는 캐릭터를 선과 악이 공존하는 다면적 인물로 그려내며 인기를 견인했다. 그를 드라마 종영을 맞아 21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지난해 7월, 드라마 대본을 처음 받아든 남궁민은 의사 나이제의 ‘파격’에 매료됐다고 한다.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대본을 읽어내려갔다. 그는 “나이제는 하얀색 가운을 입고 있으면서도, 주사를 사람을 살리는 일이 아닌 가짜 병을 만드는 데 쓰는 인물이다. 악을 벌한다는 설정이 인상적이었다”고 떠올렸다.
나이제에게 할리우드 영화에나 나올 법한 ‘다크 히어로’란 애칭(?)이 붙었던 이유다. 선한 의사였던 그는 재벌에 의해 밑바닥으로 추락한 후 변모한다. 형집행정지 권한으로 상류층에게 특권을 주는 교도소 의료과장을 비롯해 거대 재벌과 차례차례 부딪치며 정의를 실현해나간다.
악을 응징하는 방법으로 선 대신 악을 택한다는 독특한 설정은 법이나 양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고착된 사회 부조리를 환기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남궁민은 특유의 조곤조곤한 어조로 본인이 생각하는 공감의 이유를 풀어냈다.
“불의를 보고서도 참아야 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생계를 위해서, 혹은 일이기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저 넘어가야 하는 일들이 많죠. 나이제는 자신의 결심을 흔들림 없이 실현해나가는 인물이에요. 그런 점이 시청자분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해 드리는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남궁민은 열정적이면서도 차갑고, 정의로우면서도 비굴한 나이제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며 극에 설득력을 부여했다. 강렬한 분위기의 캐릭터였던 만큼 톤 조절에 신경을 썼다.
“대본을 냉정하게 대하는 법을 다시금 배운 작품이었습니다. 주인공을 처음 맡았을 때는 연기 욕심이 컸었어요. 지금은 대본을 토대로 상황에 맞는 감정선을 적절히 표현하는 게 제가 생각하는 좋은 연기의 조건이 됐습니다. 꾹꾹 누른 발성이나 행동에서 절제미를 살리고자 했죠.”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극 후반부 나이제가 위기를 맞고, 해결하는 과정이 계속 되풀이되며 스토리가 늘어진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그는 “상황이 ‘티키타카’처럼 반복되는 게 아쉽기도 했다. 제작진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국내 드라마 제작환경 상 어려운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며 “그런 빡빡한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양질의 드라마를 만들어 준 작가님과 감독님, 배우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다”고 했다.
드라마 ‘네 꿈을 펼쳐라’(EBS·1999)로 대중들에게 처음 얼굴을 알린 남궁민은 올해로 배우 인생 20살을 맞았다. 단역과 조연을 두루 거치며 ‘김과장’(KBS2·2017)으로 전성기를 알린 그는 쉼없이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감독으로 단편영화 ‘라이트 마이 파이’(2015)를 직접 연출하는 등 연기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쉴 때면 영화나 해외 드라마를 수시로 틀어놓고 영감을 얻는다는 그는 “어렵고 힘들 때도 있지만, 좋은 연기를 볼 때면 늘 열정이 다시 솟아오른다”고 했다.
“연기는 사랑과 비슷한 것 같아요. 때로는 싫다가도,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행복을 줘요. 고통스러운데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볼 때의 희열도 있죠. 그래서 저는 배우의 삶이 좋은 것 같아요. 부족함을 바탕으로 계속 발전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