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조사단) 내부에서는 배우 고(故) 장자연씨의 성폭행 피해 의혹에 대해 수사 기관의 재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가 존재했다고 볼 만한 증거들도 있었다고 한다.
조사단 위원으로 활동했던 조기영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장씨의) 성폭행 피해 의혹의 경우 10년 전 초동 수사 단계에서의 증거가 부실해 (조사단 내부에서) 여러 의견으로 나뉘었다”면서도 “수사기관이 이를 조사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다수였다”고 2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밝혔다.
이어 “중요 참고인이 출석하지 않거나 진술하지 않았기 때문에 검찰이나 수사 기관이 다시 한번 들여다보면 좋겠다는 게 다수의 의견이었다”고 덧붙였다. 강제 수사 권한이 없는 조사단의 특성상 참고인이 거부하면 소환할 수 없다.
조 교수는 그러나 “(성폭행 피해의) 증거가 전혀 없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초의 장씨 문건에 그런 부분이 기재됐다는 진술을 핵심 참고인이 번복한 적이 있다”며 “이런 부분을 수사 기관이 수사를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분명히 있었다”고 밝혔다.
술접대 등을 받은 여러 유력인사의 실명이 나열된 것으로 알려진 장자연 리스트에 대해서도 조 교수는 “수사 기록에 보전돼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하지만 장씨의 1년간 통화내역도 수사 기록에 보존돼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통화내역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부 증거들을 살펴보면 리스트가 있었다는 증거들도 있다”고 했다.
조 교수는 전날 YTN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에서도 “(장씨의) 성폭행 피해 의혹은 윤지오씨만 제기한 게 아니다. 실제 중요 참고인도 처음에는 문건에 성폭행 부분이 기재돼 있었다고 진술을 했다”고 말했다. 장씨와 같은 소속사 동료 배우였던 윤씨는 조사단 조사에서 술자리에 있던 장씨가 약에 취한 듯 인사불성인 것을 본 적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윤씨가 특이한 이름의 국회의원이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조사해보니 윤씨가 착오를 일으킨 것으로 판단됐다”며 “윤씨의 진술 신빙성이 문제가 많이 되고 있는데 수사 기록들을 보면 전반적으로 신빙성이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장씨가 숨졌을 당시 술접대 강요 등에 대한 검찰 수사가 부실했고, 조선일보 사주 일가의 수사 외압 의혹 등이 사실인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20일 발표했다. 다만 증거부족 및 공소시효 등의 문제로 성범죄에 대한 재수사 권고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장씨는 2009년 3월 유력인사들에 대한 술접대 등을 강요받고, 소속사 대표 김모씨로부터 폭행 피해 등을 입었다는 내용의 문건을 남긴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김씨를 제외한 유력인사들에게는 무혐의 처분이 내려지면서 진상 은폐 의혹이 제기됐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