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제39주년 5·18 기념식 직후 고(故) 김완봉·조사천·안종필 열사의 묘역을 참배하면서 이들 희생자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광주 무등중 3학년생이던 고 김완봉군의 묘역을 참배했다. 당시 15 살이었던 김군은 계엄군의 집단발포가 시작된 1980년 5월 21일 어머니를 찾으러 금남로로 나갔다가 목에 총탄을 맞고 숨졌다. 김군의 어머니는 적십자병원에서 아들 시신을 찾았고 8일 만인 29일 망월동 구묘역에 안장했다.
안장식날 가슴에 아들을 묻은 어머니의 한 맺힌 오열 모습이 묘역에서 취재하던 나경택 씨(5·18 당시 전남매일 사진부 차장)의 렌즈에 잡혔다. 이 사진은 5·18민주화운동의 아픔을 상징하는 사진 가운데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김군이 숨진 뒤 33년이 지난 2013년 인터넷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 이 사진이 올려지면서 유가족과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일베 모회원이 김 군의 어머니가 아들의 관 앞에서 오열하는 사진에 ‘아이고 우리 아들 택배왔다. 착불이요’라는 조롱 글을 붙여 올린 것이다.
문 대통령은 '꼬마상주' 사진으로 널리 알려진 고 조사천(당시 34살)씨 묘역도 참배했다. 건축업을 하던 조씨는 5월 20일 처가 농사일을 돕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광주교대 정문 앞에서 공수부대원들에게 학생들이 구타당하는 것을 보고 뜯어말리다가 자신도 맞고 시위에 참여하게 됐다.
그는 5월 21일 시민들이 몰고 다니던 트럭에 올라타 시위에 나섰던 그는 전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이 쏜 총을 맞고 급히 기독교병원으로 옮겼으나 곧바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조씨는 `꼬마 상주사진'으로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전남도청 앞 상무관에 안치된 조씨의 영정을 든 당시 5살이던 아들의 모습이 외신기자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다.
하얀 상복을 입고 영정 위에 턱을 괸, 슬픈 표정의 꼬마 상주 사진은 독일 `슈피겔'에 실렸다. 신군부에 의해 국내 언론에서는 금기시 된 5·18인지라, 이 사진은 80년대 뒤늦게 국내로 몰래 반입돼 대학가에 돌면서 광주의 아픔을 전해주는 ‘5·18의 상징’이자, 군부독재타도를 외치는 민주세력에 투쟁의 의지를 불타게 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고 안종필군을 찾았다. 1980년 당시 광주상업고등학교(현 광주동성고) 1학년에 재학 중안군은 안군은 5·18 당시 '교복입은 시민군'으로 항쟁에 참여했다가 16세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과 이별했다.
5월19일 광주 지역 모든 초·중·고등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진 상태인데도 안군은 도심 방면으로 쏟아져 나오는 학생 무리에 합류했다. 계엄군이 외곽으로 철수한 21일 안군이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는 아들의 신발을 쓰레기통에 넣고 옷가지를 물에 담가 아들을 말려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안 군은 교련복을 챙겨입고 집을 나가 도청을 사수하는 시민군에 합류했고 최후의 항전에 나선 27일 오전 2시쯤 도청 진입과 함께 무차별 진압에 나선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숨졌다.
계엄군이 도청을 점령한 뒤 찍힌 사진에는 상하의 교련복을 입은 안 군이 엎드린 채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당시 참상을 말해줬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안 군과 어머니 등 가족의 애절한 사연이 공연과 접목돼 펼쳐졌다. 문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앞에서 오열하는 안군 어머니의 아픔을 한껏 보듬었다.
김영균 기자 ykk222@kmib.co.kr
문 대통령이 참배한 고(故) 김완봉·조사천·안종필 열사는 누구?
입력 2019-05-18 11:43 수정 2019-05-18 1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