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 2시간 단축근무·육아휴직 13개월, ‘꿈의 직장’ 어딘가 했더니

입력 2019-05-17 15:01 수정 2019-05-18 00:10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 민족’으로 잘 알려진 회사 우아한형제들은 출산·육아 복지가 탄탄한 것으로도 소문나 있다. 배우자가 출산하면 직원에게 2주간(10일) 유급 휴가를 준다. 법적으로 보장하는 유급휴가(3일)보다 기간이 3배 이상 길다. 임신한 직원들을 위한 배려도 법이 마련한 테두리보다 튼튼하다. 임신 기간 동안 임금 삭감이 없이 하루에 2시간씩 근로시간을 단축해준다. 현행 법이 ‘임신 12주 이내’와 ‘임신 36주 이후 기간’만 보장하는 것과 대비된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도 복지책이 가동된다. 만 8세 이하 자녀를 둔 직원이 육아휴직을 신청할 경우 법정 육아 휴직과는 별개로 1개월의 휴가를 더준다. 1년을 보장하는 법에 더해 모두 13개월을 육아에 쏟을 수 있다. ‘보너스 1개월’에는 월급 전액을 지급한다는 점도 법과는 다른 지점이다. 현행 법은 1년의 육아휴직 기간에 통상임금의 50~80%만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정 의무 사항조차 제대로 못 지키는 기업의 근로자들과는 대우 자체가 다른 것이다.

지난해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출생아 수)이 0.98명까지 추락하면서 저출산 문제가 심화하고 있다. 원인을 꼽으라면 한 손으로는 모자랄 지경이다. 청년층은 ‘좋은 일자리’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마냥 어렵다보니 결혼을 뒤로 미루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비용이 수반되는 결혼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이다. 막상 결혼을 하겠다고 마음 먹어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집값이 떨어졌다고 정부는 자화자찬하지만 서민에게는 여전히 큰 부담이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지난해 11월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주목할 만하다. 국민 10명 중 4명 정도만 결혼이 필요하다고 인식한다.

결혼을 해도 애를 안 낳는 사례 역시 늘고 있다. 육아비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 원인 중 하나다. 키우는 과정에서 기저귀나 옷 등 필수 소비재를 사는 데만도 재정 부담이 적지 않다. 맞벌이를 하면 좀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아이를 봐줄 사람을 구하면 월 200만원 가까이 지출이 더해진다. 여기에 교육비가 부모의 어깨를 짓누른다.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아이 한 명 당 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100여만원의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현상은 당연해졌다. 육아 자체가 힘들다는 점도 출산을 기피하게 만든다. 홑벌이든 맞벌이든 마찬가지다.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은커녕 일·가정 양립조차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우아한형제들 사례처럼 민간이 바뀌면 되지만 현실은 이런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있는 제도조차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출산 휴가가 대표적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16일 발표한 ‘일·가정 양립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출산 전후에 90일간 휴가를 주는 출산휴가를 활용하는 사업장은 9.6%에 불과했다. 우아한형제들 사례처럼 법을 앞서가기는커녕 있는 법조차 못 지키는 곳이 90%를 넘는다. 청년 취업자 중 여성 비중이 높아진다는 점은 이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2년을 기점으로 20~29세 취업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넘어서며 남성을 앞질렀다. 지난해 기준으로는 52.1%의 비중을 차지했다.

다만 근로자 대부분이 중소기업에 근무한다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요인을 봤을 때 규제만 강화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상존한다. 17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전체 취업자(2703만8000명) 중 37.1%인 1002만6000명이 5인 미만 사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다. 소규모 기업일수록 유급 휴가 등 복지를 챙겨줄 여력이 없을 개연성이 높다.

결국 기업들이 현행 법을 잘 지킬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저출산 문제도 해결된다는 지적에 힘이 실린다. 17일 우아한형제들을 방문한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법적·제도적 뒷받침”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