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여름은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위기로 평가된다. 모든 포지션에서 호흡을 맞춘 선수들이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아틀레티코에서 재능을 꽃피운 선수들이 우승컵을 들지 못하는 팀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것으로도 분석된다. 2018-2019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이탈리아 유벤투스에 당한 패배는 아틀레티코의 많은 것을 앗아간 듯하다.
시즌 중 공개적으로 이적을 선언하는 선수는 드물다. 남은 기간 팀 분위기에 해를 끼칠 수 있을 뿐더러 팬들의 비난과 야유를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틀레티코에서는 올 시즌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이적을 선언한 선수가 무려 세 명이나 나왔다.
좌측 풀백 뤼카 에르난데스가 첫 번째다.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 아래 주목받는 풀백으로 성장하며 2018 러시아월드컵 우승 주역으로 활약한 프랑스 선수다. 독일 바이에른 뮌헨은 지난 3월 에르난데스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간판 공격수 앙투안 그리즈만 역시 에르난데스의 뒤를 따랐다. 15일 구단 채널을 통해 아틀레티코 팬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를 영상으로 올렸다. 팀을 떠나기로 했다며 그간의 응원에 감사했다는 내용이었다.
차기 행선지를 알리지는 않았다. 그리즈만은 2014년 레알 소시에다드를 떠나 아틀레티코 유니폼을 입은 직후 256경기에 나서 133골을 기록했다. 명실상부한 팀의 주득점원이다. 그리즈만의 이탈은 뼈아프다. 올 시즌 디에고 코스타와 알바로 모라타 등 다른 공격수들이 부진한 상황에서 유일하게 제 몫을 해냈다.
핵심 수비로 활약했던 주장 디에고 고딘도 9년간의 아틀레티코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 7일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팀을 떠나겠다는 뜻을 알렸다. 다만 고딘은 에르난데스와 그리즈만의 경우하고는 다르다. 33세에 접어들며 경기력 기복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 황혼기가 찾아왔음을 인정했다. “내 인생과 선수 경력에서 최고의 순간을 보냈다”며 “이별은 힘들지만 역사의 일부였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고딘의 홈 고별전이었던 지난 13일 아틀레티코 모든 팬은 경기가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나는 고딘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구단은 팀의 상징으로 남은 고딘의 사진을 액자로 만들어 그에게 전달했다. 고딘은 선수들의 헹가래를 받으며 기쁜 미소로 화답했다.
아틀레티코의 출혈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베테랑 수비수 후안프란 역시 올여름 만료되는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산티아고 아리아스에게 밀려 주전 자리를 잃으며 팀을 떠날 전망이다. 필리페 루이스도 후안프란과 같은 상황에 놓였다. 포지션 전반에 걸쳐 여러 선수가 이탈을 앞두고 있다.
4-4-2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두 줄 수비’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선수들이 모두 떠났다. 시메오네 감독은 부임 초기와 마찬가지로 팀을 재편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떠안았다. 가뜩이나 얇은 선수층이 약점으로 지적되는 상황에서 기존 자원까지 대거 이탈했다.
지갑 안에 현금은 가득 차 있다. 에르난데스는 수비수 역대 최고 이적료 8000만 유로(약 1025억원)를 안겨줬고, 그리즈만 역시 바이아웃으로 책정된 1억2000만 유로(약 1600억원) 이상을 받아낼 수 있을 전망이다. 유독 우울한 5월을 보냈을 아틀레티코 팬들이 여름에 웃음 지을 수 있을까. 그 표정에 아틀레티코의 다음 시즌이 걸려 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