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茶山(다산) 정약용 선생이어야 하는가!
글=진규동 박사(다산박물관 다산교육전문관)
茶山 정약용 선생은 1801년 겨울 강진으로 유배당해 18년을 지내면서 4서 6경의 경학과 1표 2서의 경세학 등을 포함하여 60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오늘이 마침 스승의 날로 다산과 인연을 평생의 인연으로 맺어 다산심부름꾼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며 아침 일찍 다산초당에 올라 주변을 청소하고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문득 다산 전문가인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의 ‘다산 지우기’에 대한 기사가 떠올랐다. 다산(茶山)은 정약용 선생이 18년 유배생활 중에 10년 동안 머물렀던 강진군 귤동마을 다산초당의 뒷산의 이름이다. 생차가 많이 나는 산이라고 해서 茶山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이 정약용 선생의 안부를 물으면서 “다산에 선생은 잘 계신가?”라고 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정약용 선생의 호가 茶山이 되었다 한다. 예나 지금이나 윗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예의가 아니어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동네 어른들을 부를 때도 어른들마다 택호가 있어서 이름이 아니라 택호를 불렀다. 더더욱 스승이나 대학자들을 부를 때는 이름보다는 호를 불렀다.
그런데 갑자기 다산 성생의 고향인 남양주에서 ‘다산 지우기’가 시작 되었다. 이에 대하여 박석무 이사장은 이해할 수가 없는 일로 몹시 놀랍다고 하였다. 실제 남양주시는 32년 전통의 ‘다산문화제’를 33회째인 올해는 ‘정약용문화제’로 전격 변경하였다.
그리고 남양주지역 시내버스에는 ‘열수인 정약용’이라는 광고 문구가 붙어 있고, 시청사 내에는 ‘열수 정약용을 생각하다’는 문장을 전시하기도 했다.
또 정약용 선생의 호를 ‘茶山’보다는 ‘열수(洌水)’ 또는 ‘사암(俟庵)’으로 부르자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전에도 남양주시장이 취임하자마자 ‘다산아트홀’을 ‘사암아트홀’로 별다른 설명 없이 간판을 교체했다가 주민들의 집단항의를 받고 ‘다산아트홀’로 원상 복구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왜냐면, 다산아트홀의 명칭은 ‘시민공모와 선호도조사’를 거쳐서 결정된 이름인데 시민들의 정서와 의견을 무시하고 행정적인 조치들을 취하였기 때문이다.
남양주시는 현재 다산지우기 사업을 계속 추진하기 위하여 조례까지 바꾸었다. 남양주시장이 언론에 공개한 동영상 인터뷰에서 내세우는 명분은 “전문가들의 고증을 들어보면 정약용 선생이 생전에 즐겨 썼던 호는 ‘다산’이 아니라 ‘열수’가 맞다는 견해다”면서 “다산이 정말로 정약용이 원하던 호였던가 의구심이 든다”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러한 의구심을 떨쳐버리는 방편으로 본명을 불러서 정약용으로 부르는 것이 선생의 뜻에 부합된다. 그 동안 정약용문화제가 다소 일회성 행사로 끝났기 때문에 대학자를 기리고, 그 학자가 추구했던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는 데 미흡했다고 생각한다”면서 “학술적 측면과 시대적 측면, 학자로서의 면모를 다양하게 기려볼 수 있도록 다채롭게 문화제를 치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약용 선생의 정신에도 맞고 또 남양주라는 지역정신에도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 정약용문화제를 남양주시의 대표적인 문화축제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남양주시장의 적극적인 다산정신의 새로운 조명과 다양한 문화 행사를 통한 지역정신함양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그것을 명분으로 200년 이상 불러온 정약용 선생의 호인 茶山을 지우고 정약용으로 이름을 부르겠다는 생각은 이해하기가 힘들다.
왜냐면 혹시나, 이러한 명분이 새 시장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일이 아닌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200년 이상을 불러온 선생의 호인 茶山을 지우고 정약용이라는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다산 선생의 정서가 아니다. 왜냐면,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적어도 어른이나 스승 등을 부를 때 이름이 아닌 택호나 호를 부르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우리들의 정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약용 선생의 정신에 부합되는 것이 아닌 정반대의 명분이다. 왜냐면 다산은 백성들 속에서 백성들과 함께하면서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등을 통해서 나라의 개혁은 물론 백성들의 처참한 현실을 개선하려고 늘 백성의 편에서 일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다른 관직은 구해도 좋으나, 목민의 관직은 구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즉 “비록 덕망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위엄이 없으면 하기 어렵고, 비록 하고 싶은 뜻이 있다 하더라도 밝지 못하면 하지 못한다. 무릇 그런 능력이 없는 자가 수령이 되면 백성들은 그 해를 입어 곤궁하고 고통스러우며, 사람이 비난하고 귀신이 책망하여 재앙이 자손들에게까지 미칠 것이니, 이 어찌 구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라면서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 목민관이 아닌 바에 어찌 그 직을 구한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이 있듯이 옛 것에서 지킬 것은 지키고 버릴 것은 버려서 새롭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진정 어떤 것이 버릴 것인지를 헤아리는 지혜는 늘 백성들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일찍이 다산 선생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시대는 바야흐로 제4차 산업혁명시대로 저출산과 초고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새로운 시대적 가치가 요구되는 시점에서 다산의 위민과 위국의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공정, 공평, 청렴, 창의, 개혁의 다산정신을 미래 사회적 가치로 구현해가는 일이 그 어떤 일보다 우선이라 생각한다.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