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제출한 모자보건법(낙태법) 일부개정 법률안은 여러 가지로 많은 문제점을 포함하고 있어서 이대로 개정된다면 문제가 크다 할 것이다.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지금, 과연 절차나 과정상에서 낙태법 개정안을 놓고 충분한 논의가 될지 의문이다.
따라서 올바른 방향으로 낙태법 개정안이 발의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개정안에 대해 널리 알릴 필요가 있으며 더 많은 기관과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충분한 논의의 시간도 주어져야 할 것이다.
지난 4월 11일 낙태법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이 곧 낙태죄 폐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우리 사회가 수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적절한 개정안을 만들어 내어야 할 것이다.
독일 미국 등 이미 낙태를 일부 법적으로 허용하는 국가에서도 대부분 낙태죄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무조건 선진국을 따라가는 것이 선진화된 법치도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나라마다 역사적 배경을 통해 법은 진화하고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에 논의될 낙태법이 70·80년대 선진국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동안의 낙태법의 변화과정을 살펴보고 또 현재 시점의 낙태법의 변화 방향성도 제대로 읽어야 할 것이다.
최근 낙태법 폐지의 거센 물결은 ‘여성차별 철폐’라는 슬로건 하에 이루어졌다. 그만큼 오랫동안 우리 사회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존재했고 그것은 여성들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물론 여성차별이 전혀 없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많은 부분에서 차별의 벽은 허물어지고 있다. 다만 그 차별의 벽이 한순간에 없어질 수는 없으므로 구성원 모두가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임신, 출산, 낙태는 모두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의 입장은 무게가 매우 다르다 할 것이다. 그렇지만 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성적 차이에 의한 것이지 차별만을 전제로 논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임신과 출산, 양육에 대해 국가적 책무가 매우 우선시되는 요즘이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주요선진국은 양육에 대한 남성책임법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으며 국가적 책무는 남성책임법보다 더 우선하고 있다.
청소년이라고 할지라도 양육의 책임을 져야 하며 양육을 하지 않는 생물학적 부, 혹은 모는 양육비에 대한 의무가 강제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미혼모의 대부분이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다.
또 긴 소송의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미혼모의 입장에서 양육비소송을 감행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다. 따라서 낙태법의 개정과 함께 남성 책임법과 국가의 양육비 선지급제가 더 빨리 마련되어야 한다.
낙태법의 근본 취지는 여성의 기본권 제한이 아니며 태아 생명보호를 위한 장치이다. 따라서 낙태법 개정안 역시 태아의 생명 보호를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 어느 국가도 태아생명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생명권은 협상이나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생명권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절반의 타협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느냐 죽느냐 그 두 가지 경우밖에 없으므로 생명권을 선택하면 살고 다른 하나를 선택하면 태아는 죽기 때문이다. 그래서 낙태법에서도 일부 제한되는 여성의 기본권을 무조건 가장 우선시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을 살해하면 살인죄로 사형이나 무기징역까지 처해질 수 있지만, 낙태죄는 그에 비하면 형량이 매우 낮은 1년형이나 벌금형이다. 낙태법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태아는 인간의 기본권보다는 매우 제한적으로 보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은 주에 따라 12~24주, 경우에 따라서는 낳기 직전까지도 낙태를 허용한다. 그러나 최근 많은 주에선 태아의 심장박동이 감지되는 시점, 즉 임신 5~6주를 기준으로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인 ‘심장박동 태아 보호 법안(Heartbeat Bill)’을 의결하고 있다.
2013년 노스다코타주를 시작으로 2018년 아이오와주, 2019년 미시시피주, 켄터키주, 오하이오주, 테네시주, 조지아주(상원 표결 통과 상태)가 같은 법안을 통과시켰다. 임신 6주 정도가 낙태 금지 시점으로 변경되는 이유는 현대과학 때문이다.
미국이 낙태를 법적으로 허용하게 된 1973년 로앤웨이드 사건 당시와 달리, 지금은 의학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했기 때문에 확연한 차이가 있다. 당시는 들을 수 없었던 태아의 심장박동을 초음파로 얼마든지 확인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랜웨이드 판결 당시의 태아의 생존능력이나 생명성의 증거 등을 기준으로 현재 2019년의 낙태법을 개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모든 낙태를 금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낙태를 허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정미 의원의 개정안의 요지는 “임신 22주 기간에는 인공임신중절에 관한 기존 사유에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더 하여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확대하고, 임신 14주 이내에는 어떠한 사유를 요구함 없이, 임산부의 판단에 의한 요청만으로 인공임신중절을 가능하도록 함”이다.
그러나 이 내용을 살펴보면 사실상 낙태죄 폐지와 다를 바가 없다. 이것은 14주까지 전면 허용, 22주는 사회경제적 사유의 낙태 허용이라는 것인데, 사실 사회 경제적 사유는 매우 포괄적이고 이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를 찾기가 오히려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22주까지의 모든 낙태가 자유로워진다는 것이고 낙태를 위한 그 어떠한 절차도 없기 때문에 사실상 22주라고 하는 기간의 낙태 전면 허용이 되는 것이다.
22주 이후는 임신 중기를 넘어서기 때문에 낙태가 여성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기간이다. 이 점을 감안하면 낙태를 하기 매우 어려운 시기이고 현재 우리나라 낙태의 대부분이 12주 이내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일어나는 모든 낙태를 자유롭게 허용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초기 임신에 대한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한다 하더라도 일정한 상담전문가와 의료인의 상담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은 낙태라는 위험한 시술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사회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강제로 임신을 포기하는 수많은 여성을 돕기 위한 절차이기 때문이다.
만약 낙태가 여성의 건강이나 행복을 보장할 수 있다면 여성을 위해 낙태를 조금 더 허용할 수도 있겠지만 낙태는 여성에게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매우 심각한 후유증(Post Abortion Syndrome)을 낳을 수 있으므로 가능하다면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정으로 여성을 돕는 일이다.
미국 산부인과 전문의 도나 해리슨은 “안전한 낙태란 없다”고 했다. 영국 낙태후유증 치료전문가인 버나데트 굴딩은 “낙태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모든 문제의 시작이다”고 한 것은 낙태에 대한 가장 정확한 진단일지도 모른다.
미국은 초기임신의 낙태를 전면 허용하게 된 로앤웨이드 판결 이후 매년 워싱턴 한복판에서는 태아생명보호를 외치는 생명대행진을 개최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은 외치고 있다. 엄마가 혹은 아빠가 되기를 포기한 것을 후회한다고. 내가 그때 진정으로 원한 것은 낙태가 아니었노라고.
그렇다. 물론 일부의 여성들은 낙태를 원할 수도 있겠지만 더 많은 여성은 낙태보다는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경제적인 어려움, 시간과 여가의 부족, 양육의 어려움, 사회적 편견,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 이러한 사회·경제적 사유의 낙태가 현재 대한민국 낙태의 98%라고 한다. 사회·경제적 낙태는 결국 사회경제적인 제도 보완으로 예방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이 될 것이다.
생명대행진에 참가한 10살 초등학생의 말을 전한다. “입장 바꿔놓고 생각 해 보라고 하세요. 아기가 죽고 싶겠어요? 왜 어른들은 아기를 죽이려고 하나요?” 그렇다. 왜 어른들은 아기를 살릴 방법은 고민하지 않고 죽일 방법만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궁금해지고 부끄러워진다.
한국청소년상담학회 국가정책개발위원장, 경북대학교 인문카운슬링융합전공 외래교수, 프로라이프의사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