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 발달장애 장혜정의 첫 개인전 ‘너의 궁금한 정원’ 17일까지 마포 레인보우큐브갤러리

입력 2019-05-12 22:02 수정 2019-05-12 22:04
너의 궁금한 정원. 페이스북 캡처

너의 궁금한 정원. 페이스북 캡처

탈시설의 이슈를 던져준 장혜정씨가 미술가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녀의 그림은 페이스북 ‘발달장애예술포럼’을 통해 공유되고 있다.

탈시설 이후 함께 살고 있는 장혜정씨의 언니 장혜영 영화감독은 초대의 글을 통해 “낙서가 예술이 된 사연”을 소개했다.

다음은 페이스북에 올라온 초대의 글이다.

'나를 쫓아낸 세상에 내가 다시 돌아와 그린 그림'
장혜정 개인전 <너의 궁금한 정원 how your garden grows>에 여러분을 초대하며.

혜정의 그림을 그저 끄적거림이라고 생각한 시간이 있었다. 그런 눈으로 바라보면 언제까지나 그것들은 그저 그림이 될 수 없는 끄적거림이었다. 혜정은 끄적거리고 또 끄적거렸다. 혜정이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사람들은 좋은 일이라고 반겨주었다. 혜정의 그림을 보여주면 ‘제법 잘 그린다’고 했다. ‘그림을 그릴 줄도 아네요’라고도 했다. 자기보다 잘 그린다며 신기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억압된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고 프로이트는 말했다. 우리가 아는 수많은 공포영화는 쫓겨나고 억압된 것들이 돌아오는 이야기다. 돌아온 이들은 자신을 억압한 존재에 복수를 가하거나 세상 자체를 불안에 몰아넣는다.

여기에도 돌아온 이가 있다.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존재로 낙인찍혀 세상 밖으로 쫓겨났다 이제 막 돌아온 그는 나의 동생 장혜정이다. 그런데 그는 복수심을 품는 대신 다른 길을 택했다. 그림을 그리는 길이었다.

어느날 문득 혜정이 그린 그림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을 때 나는 내가 정말 그것들을 보는 방법을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 전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혜정의 그림을 바라보며 묻고 싶다. 우리는 정말 이 그림을 볼 줄 아나요?

할 수 있음과 할 수 없음의 반복되는 대비에 피로하고 침침해진 눈으로는 혜정의 그림을 발견할 수 없다. 혜정의 그림은 “나도 할 수 있어요”가 아니라 “내가 돌아왔다”는 선언이다. 발달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일찌감치 ‘아무 것도 못 하는 존재’로 낙인 찍혀 가족과 사회에 의해 18년간 장애인수용시설로 추방당했던 혜정은 다시 돌아와 우리를 마주하며 섬뜩한 복수극 대신 무언가 다른 것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자기가 만나왔던 세상과 마음을 어지럽게 가득 채운 어떤 것들을 조금씩 종이와 캔버스 위에 풀어놓으며 혜정이 보여주는 것은 ‘할 수 있음’이 아니라 ‘있음’이고 ‘돌아옴’이다. 탈시설 후 2년이 지나는 동안 혜정은 밥 짓는 법이나 청소하고 빨래하는 법을 배우는 대신 그림을 그리는 쪽을 선택했다. 자신이 보는 세상을 표현하는 일에 시간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한때 쫓아냈던 이가 돌아왔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이 시각언어 앞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이것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의 어깨는 조금 가벼워지지 않을까. 우리가 모든 경우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전부 알고 있다는 무거운 짐으로부터.

괜찮다고, 이제 다시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하면 된다고,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혜정이 가만히 말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러분을 혜정의 정원으로 초대하고 싶다. 눈이 맑아지고 어깨가 가벼워지는 마법의 정원, 오색의 커피향이 가득 풍겨오는 정원에서, 가끔은 투명할 정도로 무거운 시간을 간직한 선과 면으로 가득찬 정원에서 여러분들을 뵙고싶다. 그 곳에서 우리가 발견해낸 것들에 대해 함께 낮은 목소리로 조근조근 이야기하고 싶다. 무엇보다 그 풍경 안의 혜정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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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정 개인전
<너의 궁금한 정원 How your garden grows >

| 전시기간: 2019년 5월 11일 ~ 5월 17일
| 관람시간: 5월 11일 오후 6시 ~ 9시까지
5월 12일 ~ 17일 오전 11시 ~ 오후 7시까지
| 전시장: 갤러리 레인보우큐브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91-27번지)
| 전시 서문:

우리는 드디어 장혜정의 그림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장혜정의 그림들은 2017년 6월 이후에 제작된 것들이다. 그 전에도 그의 그림은 존재했을지 모르나 그 과거의 그림들에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아쉽게도 없다.

작가 장혜정은 1988년에 태어나 13살이 될 무렵 가족에 의해 장애인거주시설에 보내진다. 서른이 되던 해에 탈시설을 하고 서울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기까지 그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는지에 관해서는 거의 모든 것이 질문조차 던져지지 않은 채 비밀에 싸여있었다. 많은 이들은 발달장애를 가진 그를 ‘아무 생각도 감정도 느낌도 없는 존재’ ‘아무 것도 모르는 존재’로 치부했다.

2017년 6월, 18년을 살았던 시설을 벗어나 ‘자기만의 방’을 찾은 장혜정은 이후 그림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지난 2년간 그의 그림은 일련의 변화를 거친다. 탈시설 이후 일년여 동안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드로잉을 반복적으로 제작하던 그는 약 10개월간의 느슨한 미술수업을 거치며 선 뿐만아니라 면과 색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지금 우리가 장혜정의 그림을 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림을 본다는 것이 작가가 남긴 단서를 통해 그의 세상으로 들어가 그의 방식으로 삶과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라면, 장혜정의 그림은 이제껏 우리가 좀처럼 알려 하지 않았기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겼던 세계의 윤곽을 반사광처럼 드러낸다.

장혜정의 그림은 이제껏 그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그가 돌려주는 질문이기도 하다. 너는 무엇을 볼 수 있느냐고. 당신은 이 그림을 볼 준비가 되어있느냐고.

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