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정부 발표에… 여수산단 대기오염 조작 후폭풍

입력 2019-05-12 07:00

지난달 16일 환경부는 출입 기자단에 긴급 브리핑을 공지했다. 대기오염물질을 불법 배출한 기업체를 무더기 적발했다는 내용이었다. 다음날 오전 측정대행업체와 공모해 수년간 대기오염물질 수치를 조작한 여수국가산업단지 사업체 6곳이 공개됐다. LG화학, 한화케미칼 등 굵직한 대기업이 포함됐지만 빙산의 일각이었다. 적발된 측정대행업체 4곳은 2015년부터 4년간 측정을 의뢰받은 사업장 235곳에 대해 측정기록을 허위로 발급하거나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건수로 따지면 1만3096건에 이른다.

당시 환경부는 대기오염물질 배출 조작 관련 내용이 언론 매체에 먼저 흘러 들어가자 부랴부랴 브리핑을 준비한 것으로 확인됐다. 말 그대로 ‘긴급’ 브리핑이었던 셈이다. 환경부 발표에는 적발 사실만 있을 뿐 측정치 조작으로 인한 환경오염 평가나 구체적인 주민 대책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달까지 종합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을 뿐이다. 배출허용기준치의 173배를 초과한 업체를 LG화학이라고 발표했다가 “담당자의 착오”라고 해명하는 일도 벌어졌다.

예견된 혼란이 이어졌다. 여수 지역 주민들은 연일 집회를 열고 공장 가동 중단, 영업 면허 취소, 주민건강영향평가 등을 구하고 있다. 정부의 ‘솜방망이’ 처벌은 기름을 부었다. 전남도는 관련 법령에 따라 대기오염물질 배출조작 업체에 과태료 200만원, 측정대행 업체에 대해서는 6개월 영업정지를 통보했다. 지난 7일 모인 여수산단 인근 마을(주삼·묘도·삼일) 주민 2000여명은 “이번 사건은 지역주민에 대한 살인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남도가 행정조치를 내린 사업체에는 LG화학과 한화케미칼 외에도 GS칼텍스, 롯데케미칼, 금호석유화학 등이 포함됐다. 영산강환경유역청은 이달 초 대기오염물질 배출 조작 사업체 4곳을 추가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남아있는 모든 수사가 끝날 때까지 적발 기업을 공개하는 등 추가 발표는 없다는 입장이다.

영산강환경유역청 관계자는 “모든 수사를 마치고 종합 발표를 할 계획”이라며 “혼란을 가중시키지 않기 위해 수사를 얼른 마무리하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현재 200여곳의 사업장을 수사 중인 담당수사관은 3명에 불과하다. 영산강환경유역청은 두 달 안에 수사를 끝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시점은 미지수다. 그 사이 국민의 알 권리와 형평성에 대한 지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남도는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종합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민·관 협력 거버넌스 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난 7일 1차 회의를 가졌다. 거버넌스 위원회에서 다룰 기본의제는 위반 업체에 대한 민·관 합동 조사, 여수산단 주변 대기 실태조사, 주민이나 사회단체 요청 시 환경오염 위반 배출시설 및 방지시설 공개 방안, 여수산단 주변 주민 유해성·건강영향평가 등 4가지다.

여수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지역 차원의 대책만 나와 있어 시, 도, 기업에 맡기는 분위기”라며 “정부에서 터뜨린 거니 환경부와 국회가 나서서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와 정당 등은 14일 여수시청 앞에서 결의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민·관 협력 거버넌스 위원회 2차 회의는 21일에 열린다.

전문가들은 ‘자가 측정’이라는 제도적 허점이 해결되지 않으면 대기오염물질 배출 조작 사태는 반복될 거라고 말한다. 배출사업자가 측정대행업체를 직접 선정하고 계약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짬짜미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전북환경연합은 성명서를 통해 “자가측정일에 배출가스 배출이 적은 공정으로 배출기준을 맞추는 편법이 횡횡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기배출사업장에 대한 전면 실태조사를 통해 불법적인 유착관계를 뿌리 뽑고, 대기오염방지 시설의 설치를 면제받은 산업시설에 대한 관리 감독을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