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청, 관료 집단에 불만 팽배…이인영·김수현 “정부 관료가 말 안 들어”

입력 2019-05-11 12:08 수정 2019-05-11 16:55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왼쪽)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청 ‘을지로위원회(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 민생현안회의에 참석, 대화를 나누고 있다. YTN 캡처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정부 관료들을 비판하며, 문재인정부 2주년이 아닌 4주년 같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들은 대화를 비공개로 인식해 관료 집단에 대한 불만 가득한 속내를 털어놨다. 문재인정부 주류와 정부 관료 집단 간의 간극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여권의 고질적인 남탓이라는 지적과 노무현정부 때의 트라우마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원내대표와 김 실장은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청 ‘을지로위원회(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 민생현안회의에 참석, 나란히 앉았다. 이들은 회의 시작 전 자신들 앞에 놓인 마이크가 켜진 상태인지 모른 채 대화를 나눴다.

이 원내대표가 먼저 김 실장에게 “정부 관료가 말 덜 듣는 것, 이런 건 제가 다 도맡아서 하겠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이에 “그건 해 달라. 진짜 나도 (문재인정부) 2주년이 아니고 마치 4주년 같다”고 답했다.

이어 이 원내대표가 “단적으로 김현미 장관 그 한 달 없는 사이에 자기들(관료)끼리 이상한 짓을 많이 했다”고 하자, 김 실장은 “지금 버스 사태가 벌어진 것도…”라고 말하며 구체적인 사례를 언급했다.

김 실장이 뒤늦게 마이크가 켜진 것을 인지해 “이거 (녹음)될 거 같은데, 들릴 거 같은데…”라고 말하며 이들의 대화는 끝이 났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운데) 등이 지난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3차 당·정·청 ‘을지로위원회 민생현안회의에서 위원회 출범 6주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당·청 핵심 중의 핵심인 이 원내대표와 김 실장의 발언은 문재인정부의 개혁 정책 추진 과정에서 정부 관료들이 따라오지 않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개혁을 뒷받침 해야 하는 관료 집단이 오히려 개혁의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또 문재인정부 출범 2주년을 맞았지만 경제 등 각종 분야에서 저조한 정책 성과를 낸 것에 대한 답답함도 녹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과거 노무현정부 때의 개혁 실패가 관료 집단의 저항 때문이라는 인식을 가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은 11일 “노무현정부 때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을 것”이라며 “정치적으로 개혁을 하고 싶어도 관료들이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혁이 어렵다는 인식을 가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노무현정부 때도 ‘386(1980년대 대학을 다닌 운동권 출신)’ 실세들과 관료 집단 간의 갈등은 상당히 치열했다. 대표적인 관료 출신으로 경제 정책을 이끌던 이헌재 당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386 실세들과의 갈등 속에 취임 1년 만에 물러났다. 이 부총리는 여당 의원들이 아파트 원가 공개를 추진하자 “386 세대가 대학 때 저항운동을 하느라 경제를 못 배워 시장경제를 모른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생)의 대표 주자인 이 원내대표와 김 실장 등 문재인정부 주류 그룹과 정부 관료 집단 간의 DNA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갈등은 필연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 교수는 “관료들을 다독이면서 개혁 세력에 동참시키는 게 중요한데 이런 발언으로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며 “문재인정부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당·청과 관료 집단 간의 간극이 커질 우려가 있다”고 내다봤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 집권 세력의 고질적인 남의 탓이 도진 것 같다”며 “과거 정권 탓을 하다가 이제는 공무원 탓까지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가 있으면 집권 세력인 본인들부터 돌이켜 봐야 하는데 ‘우리는 잘하고 있는데 남들 때문이다’와 같은 인식은 적절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적폐청산을 명목으로 이명박·박근혜정부 때 중요한 위치에서 일한 공무원들에게 불이익을 주면서 복지부동이라고 탓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 교수는 “적폐청산을 명목으로 과거 정권서 열심히 일한 공무원들이 불이익을 받았는데, 어느 공무원이 앞장서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상황이겠냐”며 “공무원 사회에 그런 풍조를 만들어 놓고 공무원을 탓하는 건 전형적인 남의 탓”이라고 말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