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는 학생이 찡그린 표정을 짓고 있다. 입시 미술을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옆에는 즉석 음식이 놓여있다. 생채기가 난 학생의 오른손에는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힘든 학생의 곁에 원장선생님이 다가온다. 원장선생님의 지도 덕에 학생은 이내 활기를 되찾는다.
행복은 그때까지였다. 위로와 관심을 가장한 손길은 어깨에서 옷 안으로 학생의 몸을 서서히 파고든다. 다른 학생들은 “쟤만 봐주더니 성적이 계속 오른다”며 질투한다. “너만 봐주는 거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면 안된다”는 원장선생님의 말은 대학입시와 연결돼 학생의 입을 닫게 한다. 원장선생님의 보강수업과 원장실은 지옥으로 변한다. 학원을 옮겨달라는 요청에 부모님은 “입시가 얼마 안 남았다”며 단칼에 거절한다. 그렇게 학생은 가정에서도 학원에서도 혼자가 된다.
그런데 그때 우울해하는 학생에게 누군가 손을 건넨다. 비슷한 경험을 한 적 있는 듯한 그는 “혹시 너도냐”고 말한다. 피해자들은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고, 그렇게 열아홉 살의 연대가 만들어지는 장면과 함께 33컷의 만화는 끝난다.
최근 #우리는열아홉살입니다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입시미술계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만화가 SNS에 퍼지고 있다. “우리 주변에 만연한 미술 입시학원 내 성범죄를 단절하기 위한 캠페인입니다”라는 글도 함께 붙어 있다. 만화는 지난 2일 처음 올라온 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에서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이 기사를 접한 김모(25)씨는 “공감된다. 입시미술 학원을 다녔을 때 성희롱이나 성폭력은 없었으나 불순한 의도를 가졌다고 느낀 강사들이 있었다. 강사로 느끼기 어려운 성적 발언이나 터치도 있었다”고 했다.
김씨는 강사 일을 할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원장선생님이 ‘19금 만화’를 함께 그리자고 제안했다. 정말 예술을 하고 싶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느꼈다. 힘이 있는 다른 여선생님이 막아줬다”고 털어놓았다.
이 작품을 그린 만화가는 지난 8일 KBS1 ‘김경래의 최강시사’와 진행한 전화인터뷰에서 “강사 일을 그만두고 학교를 졸업했을 때 뒤늦게 이런 얘기를 들었고 너무 미안했다”면서 “만화로 그 이야기를 대변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많이 알려져서 그 친구들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를 조금이라도 더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10일 국민일보와의 SNS 대화에서는 “기자님들께서 많이 연락을 하신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걱정도 고민도 많이 된다. 많은 관심이 오히려 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박준규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