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페미니즘이 동물학대 멈추게 하나

입력 2019-05-11 05:00
앞을 보는 개 한 마리. 픽사베이


얼마 전 서울대에서 ‘동물 학대 실험’ 논란이 있었다. 복제견 ‘메이’가 학대를 받았다는 의혹이었다. 서울대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산하 조사위원회는 9일 동물을 학대하는 실험방법은 확인할 수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론은 조사 결과를 믿지 않는 분위기다. 올해 초에는 동물 구조 단체 케어의 박소연 대표가 유기견을 안락사시켰다는 의혹으로 비난을 받았다.

동물의 생명권에 대한 관심은 개와 고양이 등을 키우는 인구가 늘어난 면도 있지만 다른 생명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비건(vegan) 페미니즘’도 크다. 비건은 육류와 달걀, 유제품 등을 먹지 않고 동물을 희생시켜 얻은 의류나 동물실험을 거친 화장품 등을 사용하지 않는다. 비건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는 의식을 확장해 동물의 생명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활동한다.

비건 페미니스트 네트워크가 연 비건 페스티벌. 비건페미니스트네트워크 페이스북.

한국에서는 2017년 4월 비건 페미니스트 네트워크(비페넷‧facebook.com/veganfemi)가 출범해 활동하고 있다. 이 단체는 23일까지 신규 회원을 모집하고 있다. 비페넷은 이 모집 글에서 “우리는 광의로써의 비거니즘 지향한다. 따라서 비거니즘에 단계를 두지 않고 서로의 실천 정도를 묻지 않는다. 비거니즘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실천적 노력을 가장 중요시한다”고 밝혔다.

비페넷은 2017년 정부가 가임기 여성의 지역별 분포도를 나타낸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발표했을 때 국가가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본다는 것에 분노했던 여성들을 지지한다. 같은 이유로 우유 생산을 위해 강제로 임신을 당하는 젖소와 달걀 생산을 위해 생리적 조작을 당하는 암탉의 고통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다.

이 단체 회원들은 그동안 대구 치맥 페스티벌 반대 시위, 개식용 반대 시위, 동물권 행진, 발암물질 생리대 진상규명 촉구 시위, 이화여대 Right Light Festival, 월경 페스티벌, 3·8 한국여성대회, 여성환경연대의 ‘2030 에코 페미니즘 포럼’ 등 비거니즘, 페미니즘, 환경 분야 시위와 행사에 열심 참여해 왔다.

2016년 서울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후 페미니즘의 바람이 사회 곳곳으로 퍼지고 있다.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많은 이들이 소수자와 약자, 동물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에도 발 벗고 나선다. 이런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비건이 문화계에서도 핫한 키워드가 되는 분위기다. 국내 최대 문학잡지 릿터(민음사) 4‧5월호는 비거니즘을 주제로 다뤘다.

비거니즘을 주제로 다룬 '릿터' 표지. 민음사 제공


시장에서는 비건 식단 열풍과 함께 뷰티 비건 상품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는 세계 비건 화장품 시장이 연평균 6.3%씩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동물 실험에 반대하고 비건 제품을 판매하는 영국 ‘러쉬’, 미국 ‘닥터브로너스’ 등이 대표적 기업이다. 한국에서도 비건 화장품 브랜드 아워글래스(Hourglass)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아워글래스가 올해 3월까지 면세점에서만 매출 60억원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이 브랜드 전체 매출인 50억 원을 뛰어넘는 금액이다. 국내 브랜드로는 ‘보나쥬르‘, ‘아로마티카‘가 대표적인 곳으로 꼽힌다. 보나쥬르는 현재 44개 제품이, 아로마티카는 14개 제품이 비건 인증을 받았다. 페미니즘에 눈 뜬 젊은 여성들이 시장과 사회를 바꿔가고 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11일 “인간 중심의 페미니즘을 넘어 동물권으로까지 확장된 페미니즘은 사회적 약자에 관한 인식을 바꾸고 생명권을 우선시하는 가치 소비를 실현하는 것 같다”며 “소비가 단지 개인의 행복이 아니라 동물의 생명권까지 고려한다는 메시지는 기업에게도 큰 시사점을 주고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