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소송법 학자들이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와 관련해 “진행되고 있는 입법과정이 그 절차와 내용에 있어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회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내놓은 셈이다.
한국형사소송법학회(회장 이상원)는 10일 “(검찰과 경찰 중) 어느 일방을 편들이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를 위해 바람직한 형사사법제도가 수립되기를 바란다”며 입장문을 냈다.
학회는 입장문에서 “현재 논의되는 내용은 형사사법제도의 근본적 변혁을 시도하는 것으로 관련 기관과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고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바탕에서 입법이 이뤄질 때 절차가 정당할 수 있다”며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무 연관성을 발견할 수 없는 두 분야(선거와 형사제도)의 법안을 함께 묶어 패스트트랙으로 가져가는 것은 국가의 근간인 형사사법제도를 흥정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고 했다.
학회는 수사권 조정안의 내용에 대해서도 “경찰의 1차 수사종결권 행사에 반대하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 방안을 촉구한다”며 비판했다.
학회는 “기소 뿐만 아니라 불기소 역시 사법적 결정의 성격을 가지고 양자는 논리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며 “경찰에게 불송치 결정이라는 일종의 불기소처분권을 부여하는 것은 사법절차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검사의 개입 없는 경찰의 불송치결정은 독자적 수사종결권으로 통제받지 않고 남용될 위험이 크다”고 덧붙였다.
학회는 이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수사권 조정 논의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이는 주로 검찰의직접수사와 관련돼 지적되어 왔다”며 “그런데 현재 논의되고 있는 수사권 조정 방안에는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등으로 제한하는 내용만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검찰의 각종 권력남용과 비리 문제가 검찰에 집중된 ‘권력 부작용’이라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에 앞서 검찰권 남용에 대한 효과적 통제장치 마련 논의도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학회는 “이러한 의견이 검찰개혁을 훼방하거나 지연하려는 의도로 곡해되기를 원하지 않으며 어떤 정파적 입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오해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수사권 조정이 형사절차 본질을 훼손하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염려하는 진심에서 나온 호소”라고 강조했다.
안대용 기자 dan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