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수사권 조정안 따를 때 ‘억울한 누명’ 못 밝힐 수도”… 현직 검사 지적

입력 2019-05-10 13:13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한 검사가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따를 때 성범죄와 무고처럼 ‘동전의 양면’ 같은 사건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는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성범죄와 무고처럼 진술 외 특별한 증거를 발견하기 어려운 사건에서 검찰이 원활하게 수사를 지휘하지 못해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검찰청 연구관 김은정(사법연수원 38기) 검사는 지난 8일 저녁 검찰 내부 통신망(이프로스)에 ‘수사권조정안의 문제점 검토 - 실제 ‘성범죄 무고’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김 검사는 과거 자신이 수사 지휘했던 사건을 예로 들어 수사권 조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 검사가 소개한 사례는 이렇다. 남성 A씨는 자신의 험담을 한다는 이유로 좋지 않게 보던 남성 B씨가 성범죄로 집행유예 중인 사실을 알고 여성 C씨를 매수해 B씨와 성관계를 갖게 했다. 둘의 성관계는 합의로 이뤄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 후 C씨는 경찰서에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준강간을 당했다”고 신고했고 해당 경찰서는 B씨의 전과 등을 근거로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B씨는 C씨와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는 점에서 억울해 했고 또 다른 경찰서에 C씨를 무고 혐의로 고소했다. C씨가 B씨를 준강간으로 고소한 사건과 B씨가 C씨를 무고로 고소한 사건을 함께 맡은 검찰은 보강 수사를 진행해 A씨와 그의 지인들이 B씨를 계획적으로 성폭행범으로 몰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수사 지휘를 통해 B씨의 억울함을 밝힌 것이다.

김 검사는 현행 시스템에 따를 때 C씨의 진술 외에 성범죄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추가 증거 수집이 수사 지휘로 가능하다고 했다. 실제 사건에서 검찰은 당시 사건 장소로 지목된 주점과 모텔 사이 CCTV 영상을 확인하고, C씨가 모텔에서 나와 경찰에 신고하기 직전 통화한 상대 등을 수사 지휘로 파악해 C씨가 A씨 일행과 통화한 정황을 파악했다.

하지만 김 검사는 수사권 조정안에 따를 때 B씨의 억울함을 밝히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검사의 보완수사 요구에 대해 경찰이 임의로 “C씨의 통화 내역은 프라이버시에 해당하는 내용”이라며 보완수사 요구를 거부할 경우 검찰이 더 이상 손을 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또 실제 사례에서는 검찰이 증거 불충분으로 B씨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을 반려했지만 수사권 조정안에 따를 때 추가적인 구속 가능성이 생긴다고 했다. 김 검사는 “경찰이 영장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신청하고 B씨의 전과 등에 비춰 구속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해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며 “굳이 경찰이 품을 들여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를 이행하기 보다 일단 영장 심의를 신청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행 시스템에서 경찰이 구속영장을 재신청하기 위해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아야 한다는 점과 비교할 때 ‘억울하게 구속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아울러 현행 시스템에 따를 때 검찰이 두 경찰서로 나뉜 각각의 고소 사건에 대해 수사 내용 공유 등의 협조를 구하며 수사를 지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수사권 조정안에 따를 때 검찰은 해당 사건에 한정한 보완수사·재수사만 요구할 수 있어 두 경찰서 사이 수사 상황을 조율하며 협조하도록 조치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동전의 양면’이 되는 사건에서 다른 경찰서의 비협조로 증거 수집이 곤란해져 B씨처럼 누명을 쓴 사람의 억울함을 해소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검사는 “경찰이 사건을 자체 종결하기 위해 C씨에게 유리한 정황과 진술만 사건기록으로 모아뒀다면 검찰이 사후적으로 진실을 규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검사는 “수사권 조정안에 따르게 되면 경찰은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를 임의로 거부할 수 있다”며 “더욱 우려되는 것은 영장심의제도를 통해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이 구속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각각 다른 경찰서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수사 중인 성폭력 피의사건과 무고 피의 사건은 통합 수사되지 못해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이 구속돼 처벌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안대용 기자 dan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