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고속도로 한가운데에 차를 정차한 뒤 밖으로 나왔다가 택시와 승용차에 잇따라 치여 사망한 20대 여성 배우 한지성(28)씨 사고를 두고 네티즌의 관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고 발생 나흘째인 9일에도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10위에 이 사건 관련 키워드가 다수 자리했다.
유족은 지나친 관심과 도 넘은 추측성 댓글에 심적 고통을 호소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유족 의사를 반영해 취재 요청에 공식적으로 응하지 않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부검 결과가 나온 뒤 수사가 마무리되면 브리핑하겠다는 방침이다. 김포경찰서 관계자는 “유족이 매우 힘들어하고 있다”며 “지금 상황에서 (수사 내용을 일일이 공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사고 일시, 피해 상황 정도다. 현장에 있던 다른 차량 운전자에 의해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되긴 했지만 한씨가 2차로에 정차하고 하차한 이유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았다. 이후 한 매체의 보도로 사고 당일 조수석에 타고 있던 한씨 남편이 음주 상태였던 것만 추가로 확인됐다.
갓길 아닌 2차로에 정차…남편 “소변이 급했다”
한씨는 지난 6일 오전 3시52분쯤 경기 김포시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에서 주행하다 2차로에 차를 세운 뒤 밖으로 나왔다. 정확한 사고 지점은 김포시 고촌읍 인천공항고속도로 서울 방향 김포공항IC 인근 개화터널 입구였고, 편도 3차로 도로였다.
당시 조수석에는 한씨 남편 B씨가 타고 있었다. B씨는 한씨가 비상등을 켜고 정차하자 밖으로 나와 갓길로 뛰어갔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내가 소변이 급해 차량을 세우게 됐다”며 “인근 화단에서 볼일을 본 뒤 돌아와 보니 사고가 나 있었다”고 진술했다. 사고 사실을 뒤늦게 인지했다는 것이다.
한씨는 B씨를 따라 내려 2차로에 서 있었다. 당시 3차로에서 주행 중이던 스포티지 차량은 B씨가 화단으로 이동하는 것을 목격하고 정차했지만, 뒤따라오던 택시는 그렇지 못했다. 택시는 스포티지 차량을 피하려다 한씨를 들이받았고, 1차로에 쓰러진 한씨는 해당 차로를 달리던 올란도 승용차에 연달아 치였다.
119구급대가 도착했을 당시 한씨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고 한다. 국과수는 1차 부검 결과 한씨 온몸에 차량 충격으로 인한 다발성 손상이 발견된다는 구두소견을 경찰에 전달했다. 경찰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택시기사(56)와 올란도 운전자(73)를 입건해 조사 중이다.
제보자 블랙박스 보니…‘허리 90도로 숙인 한씨’
사고 현장을 목격한 C씨는 자신의 차량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을 언론사 2곳과 경찰에 제보했다. 9일 공개된 영상에 따르면 C씨는 사고 발생 직전 1차로에서 주행하며 한씨 차량을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 영상에는 B씨가 갓길 쪽으로 급히 뛰어가고, 한씨가 자신의 차량 트렁크 쪽에 선 모습이 담겨있었다.
한씨는 B씨가 차에서 내린 지 약 10초 만에 운전석에서 하차했다. 이후 차량 뒤쪽으로 걸어가 트렁크 앞에 멈춰섰다. 그는 허리를 90도로 숙인 뒤 좌우로 비트는 행동을 1~2차례 했다. C씨와 지인은 차 안에서 그런 한씨를 보며 “토하는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고 당일 영종도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셨다”고 진술했다. 다만 한씨가 술을 마셨는지는 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B씨는 한씨가 뒤따라 내린 이유에 대해서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한씨의 음주 여부를 밝히기 위해 B씨가 술을 마셨던 가게와 동석자들을 조사하고 있다. 국과수 부검 과정에서도 한씨의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씨 차량 블랙박스는 사고 당시 녹음 기능이 꺼져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택시와 올란도 승용차의 사고 당시 속도도 분석하고 있다. 두 차량이 한씨를 연달아 들이받은 만큼, 한씨 사망의 직접적 원인이 된 사고가 둘 중 어느 차량과 부딪혔을 때인지도 확인할 예정이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