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우리나라 경제 구조의 특수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최저임금을 획일적으로 인상하면서 고용과 소득 분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해 기준으로 2021년까지 법정 최저임금을 1만원 인상할 경우 4년간 총 62만9000명의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분석도 곁들였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에 착수한 가운데 경영계가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과 주휴수당(주 15시간 이상 근로시 제공하는 유급휴일) 단계적 폐지를 한다면 향후 4년간 54만여 개의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추산도 내놨다.
한국경제연구원은 9일 ‘최저임금 차등화의 경제적 효과’ 보고서에서 “법정 최저임금을 2021년까지 1만원 올린다고 가정하면 산입범위 확대와 주휴수당으로 2017년(6470원) 대비 80%나 상승하는 1만1658원”이라며 “이처럼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오르면 총 62만9000명의 고용이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생산성이 낮고 최저임금 영향률이 높은 업종을 대상으로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할 경우 고용 감소는 16만5000명에 그쳐 46만4000개의 일자리를 보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여기에 주휴수당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면 추가로 7만7000개의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3개의 시나리오로 구분해 최저임금에 따른 고용과 경제효과를 분석했다. 시나리오1은 모든 업종에 최저임금과 주휴수당을 동일하게 적용할 경우였다.
시나리오2는 생산성이 낮고 최저임금 영향률이 높은 특례업종을 따로 구분해 최저임금을 연 3% 인상한다는 것이다. 나머지 업종만 최저임금, 주휴수당을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했다.
시나리오3은 특례업종의 경우 연 3% 인상은 시나리오2와 같지만 나머지 업종의 주휴수당을 단계적으로 반영하도록 했다.
시나리오1일 때 2021년까지 일자리 63만여 개가 사라졌다면 시나리오3일 때 같은 기간 사라지는 일자리 수는 8만7000여 개였다. 소득재분배에도 시나리오별 차이가 있었다. 소비자물가와 극내총생산(GDP)의 경우 시나리오1을 적용하면 각각 1.78% 인상, 1.08% 감소했다. 이에 비해 시나리오3일 때 소비자 물가는 0.43% 오르고 GDP는 0.34% 감소하는 데 그쳤다.
보고서가 강조한 것은 업종별 차등적용이다. 생산성이 낮고 최저임금의 영향률이 높은 일부 업종을 특례업종으로 구분해 당장 최저임금 인상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업종간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는 사회적 우려에 대해선 한국만의 산업 구조 특성을 이유로 들었다. 체질을 개선하지 않은 상태에서 최저임금만 올리면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고도 했다.
보고서는 노동 경직성, 수당 위주의 임금구조 등 구조적 특성 때문에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릴 경우 저임금 근로자는 빈곤의 덫에 빠지고 오히려 고임금 근로자가 혜택을 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으로 일자리를 잃으면 재취업 기회가 낮기 때문에 저임금 근로자는 빈곤에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조경엽 선임연구위원은 “최저임금이 높아지고 주휴수당까지 지급하면 노동을 포기했던 고학력, 고소득의 경력단절 인력들이 노동시장에 나와 저임금 근로자를 대체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고용주가 주휴수당을 피하기 위해 근로시간을 단축하기 때문에 일자리를 유지한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이 감소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