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미래교회 리포트] 전통과 현대의 맥을 이어라

입력 2019-05-09 10:13

이머징 교회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던 어느 날, 실천신학을 공부하고 있던 한 대학원생이 스텐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에게 이머징 교회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타임(Time)지에 의해 금세기 최고의 신학자로 선정되었던 그의 대답은 이랬다. “교회의 미래는 이같은 것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네. 미래는 매 주일 똑같은 일을 하는 것 안에 있네!” 아쉽게도 이러한 대답이 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시는 못 했다. 촌각을 다툴 만큼 심각한 위기 속에 놓여 있는 현대 교회를 향한 조언치고는 성의 없이 들렸기 때문이다.①

물론 급진적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머징 교회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던 브라이언 맥클라렌의 다급한 외침을 들어보자.

그러니까,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다면, 우리는 새로운 교회가 필요할 것이다. 새로운 종교 그 자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신학을 위한 새로운 틀이 필요할 것이다. 새로운 성령이 아니라, 새로운 영성이다. 새로운 그리스도가 아니라,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필요한 것이다. 새로운 교단이 아니라, 모든 교단 안에 새로운 종류의 교회가 필요한 것이다.②

혁신과 변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교회 지도자들은 언제나 전통과 변화의 긴장 속에서 고민과 갈등을 경험한다. 기성세대에게 익숙한 전통만을 붙잡고 있기에는 교회를 떠나는 젊은 세대들이 보이고, 급진적 변화를 추구하기에는 기존 성도들의 저항이 너무나 크다. 이러한 고민에 대해 레너드 스윗은 전통과 변화를 양자택일의 관점이 아닌 조화와 상호의존의 관계로 풀었다. 그에 의하면 강풍이 몰아닥치고 교회라는 배가 정박해 있을 때 거친 바다로 나가기 위해서는 ‘케징’(Kedging), 즉 닻의 줄을 잡아당겨 배를 이동시키는 고대의 항해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전통의 닻을 미래로 던진 후에 잡아당겨 앞으로 나가는 방식을 취하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오늘 교회의 문제는 “너무 전통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충분히 전통적”이지 못하다는 데 있다.③ 만약 전통이 지니고 있는 풍요와 미래의 새로운 에너지를 함께 통합할 수 있다면, 교회는 이 시대에 새로운 시대 정신을 제시하고 더 깊은 샘물을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성경이라는 텍스트를 통해 변하지 않는 복음을 제공하셨고, 역사를 통해 풍부한 전통과 예식, 신조와 신학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은 과거를 소멸시키신 후 새것을 제공하시는 분이 아니라 전통이라는 깊이 위에 새로운 상상력과 창의력을 더하심으로 풍성하고 아름답게 그분의 나라를 세워 가신다. 당연히 교회는 이 점을 고민해야 한다. 어떻게 과거의 전통을 현대와 연결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더 깊은 곳에 닻을 내릴 것인가? 어떻게 깊은 영성의 샘물을 끌어 올려 이 시대를 적시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같은 질문 앞에 짐 벨처(Jim Belcher)는 성경과 전통에 뿌리를 내리되 미래 지향적인 교회가 되기 위한 열망을 품고 제3의 길을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표현했다.

<성경 + 전통 + 선교 = 깊은 교회론> ④

벨처는 성경과 전통만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모델이나 성경과 선교 만을 강조하는 유기적 모델이 갖는 한계를 지적하면서, 위대한 전통에 기초를 두되 시대 변화와 문화에 민감한 선교적 모델이 될 것을 주문한다. 교회가 한쪽에 치우치게 되면, 전통과 과거의 틀에 포로가 되거나 혹은 세상 문화에 동화될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교회는 균형을 이루되 제도와 유기적 특성이 시너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깊은 전통이 영혼을 살찌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교회는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흥미롭게도 오늘날 젊은 세대를 품고 놀라운 성장을 이루고 있는 북미 교회들은 이 지점에 공통점을 보인다. 과거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획일화된 사상과 구조에 회의적인 태도를 지닌 포스트모던 (혹자에 의해서는 후기 포스트모던) 세대들을 변화시키고 있는 교회들은 더 깊고 신비로운 영성을 추구한다. 젊은 교회일수록 종교색을 없애고, 교회 같지 않은 교회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구도자 운동(seekers movement)의 그림자가 급속히 제거되고 있다. 그 대신, 교회는 더욱 영적이며 관계적인 신앙 공동체의 모습을 회복하고자 노력한다. 이 때문에 그들은 기호와 상징의 중요성을 재발견하고 잃어버린 예전과 의식을 되살린다. 많은 교회들이 침례탕을 사용해 정기적으로 세례 의식을 행하고 매주 성만찬을 드린다. 찬양과 기도뿐 아니라 서로를 축복하는 일, 받은 은혜를 간증하는 일, 다양한 예술 활동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구현해 내는 일, 침묵과 묵상, 역사적인 요소 등을 통해 예배를 풍요롭게 만든다.⑤ 역사에 담긴 교회의 유산을 재해석하고,이를 현대에 접목시켜 하나님을 더욱 깊이 경험한 후 다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공동체적 사역이 회복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이 시대의 교회가 미래를 여는 열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바로 전통을 사랑하되 묶이지 않고 현대적 영성을 입히는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이는 2천 년 전 유물을 그대로 재현하거나 답습하자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살리되 새로운 상황에 맞게 적응시켜야 한다. 스윗의 표현대로 “전통을 신뢰하되 한 번도 접해 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살려내는 노력이 필요하다.⑥ 더 깊은 신비와 아름다움, 하나님을 향한 영적 경이로움과 놀라움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므로 리더들이여!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선교적 상상력을 통해 전통에 영성을 입히는 방법을 찾으라.
전통과 현대의 맥을 잇는 노력을 기울이라.

① Anthony D. Baker, “Learning to Read the Gospel Again” in Christianity Today, 2011.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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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Bryan McLaren,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온다(A New Kind of Christian), 김선일역, (서울: IVP, 2008), 25. 재인용; 저 건너편의 교회(The Church on the Other Side), 이순영 역, (서울: 낮은울타리, 2002), 14.

③ Leonard Sweet, 모던 시대의 교회는 가라(Aqua Church), 김영래 역, (서울: 좋은씨앗, 2004), 101-102.

④ Jim Belcher, Deep Church, (Downers Grove, IL: IVP, 2009), 173.

⑤ Robert Webber, 젊은 복음주의자를 말하다(The Younger Evangelicals), 이윤복 역, (서울: 조이선교회, 2010). 350-353.

⑥ Leonard Sweet, 모던 시대의 교회는 가라, 117.

이상훈 (풀러선교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