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인데…어머니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잔혹한 살인으로 어머니를 잃은 딸은 8일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오전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판사 오석준) 심리로 열린 ‘등촌동 전처 살인사건’ 피고인 김모(48)씨의 항소심 공판기일에 참석한 김씨의 큰딸은 ‘아버지’ 대신 ‘살인자’나 ‘피고인’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그는 “이 자리가 너무 참담하고 고통스럽다”며 여전한 심적 고통을 토로했다.
검찰 측 요청으로 발언 기회를 얻은 큰딸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어머니가 너무 그립다”며 “우리 가족은 지난해 10월 22일(사건 당일) 이후 시간이 멈췄다”고 말했다.
또 “살인자 김씨는 저희가 가장 잘 알고 있다. 폭력적이고 주도면밀한 성격으로 법망을 빠져나갈 궁리만 해 우리 가족은 앞날이 두렵다”면서 “어머니를 잃고 평생을 살아갈 저희 자매를 위해서라도 법정 최고형을 선고해 달라”고 했다. 김씨는 큰딸이 발언하는 동안 다른 곳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이번 공판기일에는 피해자 모친을 비롯한 유족도 방청석에 자리했다. 피해자 모친은 김씨가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자 “왜 죽였냐 나쁜 X아. 무슨 이유로 죽였냐. 책임져라”라며 울분을 토했다.
김씨는 최후 진술을 통해 세 딸과 피해자 유족에게 사과했다. 그는 “삶의 등대가 돼야 할 아빠가 엄마를 해친 범죄자라는 것은 딸들이 감내하기 힘든 고통일 것”이라며 “감당할 수 없는 큰 상처를 입고 살아갈 딸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천사 같은 세 딸에게 고개 숙여 사죄한다”고 말했다.
이이 “사랑하는 딸을 잃고 절망과 고통에 살아갈 전 부인 가족에게도 무릎 꿇고 사죄한다. 하늘이 허락한 시간이 될 때까지 반성과 속죄하며 살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검찰은 김씨에게 1심과 같이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선고 공판은 다음 달 14일 오후 2시10분에 진행될 예정이다. 앞서 1심은 김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지난해 10월 22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 부인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범행 전에도 피해자와 세 딸에게 상습적인 폭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세 딸은 사건 이후 김씨의 사형을 촉구하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다. 둘째 딸은 지난해 말 김씨의 실명과 얼굴이 노출된 사진을 인터넷에 공개하기도 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