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부모 소유물 아냐”… ‘살해자살’ 안전망 어디에

입력 2019-05-08 11:02 수정 2019-05-09 14:51
게티이미지뱅크

신변을 비관한 살해자살(Murder Suicide)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형태다. 울산대교에서 모녀가 투신 소동을 벌이다 5시간 만에 구조돼 가슴을 쓸어내렸던 날, 김포에서는 생활고를 비관한 모자가 끝내 사망했다.

A군(10)은 경기도 한 아파트에서 7일 오전 10시55분쯤 연탄가스에 중독돼 숨진채 발견됐다. 어머니 B씨(41)는 아파트 다용도실 완강기에 목을 매 숨져 있었다. 딸 C양도 집에 함께 있었으나 목숨을 건졌다. 경찰 관계자는 “사망한 어머니가 특별한 직업이 없었다. 생활고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이날 오후 4시30분쯤 울산 남구 울산대교에서는 자살 소동이 벌어졌다. 30대 여성이 10대 딸과 함께 바다에 뛰어들겠다고 다리 위에 아슬아슬하게 섰다. 경찰은 협상요원을 투입해 5시간 가까이 설득했고 저녁 9시30분쯤 구조했다.

“살해자살 방지 위한 사회안전망 확충해야”

부모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앞서 자녀를 살해하거나 혹은 함께 생을 마감하는 살해자살이 반복되고 있다. 어린 자녀들은 영문 모른 채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다.

지난 5일 어린이날 새벽 4시15분쯤 경기도 시흥에서 일가족이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30대 중반 부부와 4살 난 아들, 2살 난 딸이었다. 남편은 아들을, 부인은 딸을 꼭 안은 채 숨을 거뒀다. 이들에게는 빚 7000만원이 남아있었다.

백기종 전 수서경찰서 강력계 팀장은 7일 YTN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에서 “2살과 4살짜리 아이를 꼭 끌어안은 채 사망할 때 부모의 마음은 어땠겠느냐. 하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보다 회생할 생각을 했어야 한다”며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절대 아니다. 부모가 아이를 살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범죄전문가들은 동반자살이라는 표현을 지양할 것을 당부했다. 이호선 심리상담사는 “동반자살이라는 표현 자체가 잘못됐다. 상대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면 살해자살”이라며 “아이들은 동의를 할 수가 없다. 어떤 표현인지, 어떤 상황인지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부모가 갖고 있는 잘못된 전능감이 문제다. 부모가 아이들의 미래까지 담보하고 있는 건 아니다”라며 “부모가 아이들의 생명과 미래까지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오산”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가족이 가지고 있는 끈끈함이나 응집력이라고 하는 우리 사회의 아주 긍정적인 요소가 완전히 왜곡된 형태로 나타난 일종의 잘못된 공동체 의식”이라며 “구조적인 측면에서 살 통로가 있고 도와줄 손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아울러 “왜 그들에 대한 도움의 손길이 없었을까. 또 그들이 사회적으로 선택할 수 있을 구조 창구는 왜 없었을까”라며 “경제적인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제2의 방어막, 제3의 방어막이 없었기 때문에 이 청춘들이 아이들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게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백 전 팀장 역시 “사회안전망이나 국가안전망 시스템이 너무 허술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살해자살은 가정 개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가정 문제는 가정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회에서 당리당략 당파싸움 그만하고 국민이 정말 가렵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긁어줘야 한다. 정말 이런 부분(사회안전망 확충)에 예산을 끌어다주고 지역이기주의 같은 포퓰리즘을 지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상담사는 “사회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서비스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주민센터나 구청에만 가도 상담을 받을 수 있다”며 “최장 6개월까지 한 달에 150만원 정도 지원하는 서비스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지역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시스템 중 죽이는 시스템이 아니라 살리는 시스템을 위한 것을 청원해야 한다”고 전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