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좋아한다. 숙성이 오래될수록 맛은 더 좋아진다. 나 역시 그렇다.”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의 대표 공격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말이다. 나이를 먹으며 신체적 능력 저하가 오는 것이 아니냐는 주변의 우려에 대한 대답이었다. 올 시즌 유럽에서는 이탈리아 프로축구 UC 삼프도리아의 공격수 파비오 콸리아렐라가 이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2018-2019시즌 세리에A 득점왕을 목표로 하고 있다. 25골을 기록하며 경쟁자인 두반 자파타(22골)를 크게 앞지른 상황이다. 잉글랜드와 스페인을 오가며 숱한 득점왕을 차지했던 호날두(21골)의 막판 몰아치기가 변수로 꼽히지만, 콸리아렐라의 득점왕 경쟁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시즌 종료까지 3라운드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역전은 쉽지 않아 보인다.
1983년생의 콸리아렐라는 나이는 올해 37세. 많은 전문가는 축구선수가 신체적으로 정점을 찍을 시기로 27세 전후를 꼽는다. 실제로 콸리아렐라의 경력 역사상 올 시즌 이전까지 가장 많은 골을 터뜨렸던 때도 그 시기였던 2008-2009시즌이다. 당시 21골을 터뜨렸다.
콸리아렐라의 최전성기는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올 시즌 시작됐다. 일반적으로 황혼기를 넘어 은퇴를 선언할 나이다. 혹은 유럽보다 부담이 덜한 아시아 무대로 자리를 옮긴다. 그러나 콸리아렐라는 평생 자신이 누볐던 곳에 남아 선수 인생의 정점에 섰다.
콸리아렐라는 1999년 토리노 칼초에서 프로 데뷔를 한 이후 선수 생활 20년 내내 이탈리아 무대에 몸담았다. 올 시즌 현재까지 세리에A에서 기록한 25골은 그의 단일 시즌 최다골이다. 인상적인 흐름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이후 8년 4개월 만에 이탈리아 대표팀에 합류했다.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이 콸리아렐라의 노련함을 높게 평가했다.
지난 3월 리히텐슈타인과의 국제축구연맹(FIFA) A매치 평가전에서는 이탈리아 대표팀 역사상 최고령 골을 터뜨렸다. 당시 그라운드에서 가장 어렸던 유벤투스 유망주 모이스 킨과는 17살의 나이 차다. 신체적 능력이 떨어질 시점에서 20세의 어린 선수와 내부적 경쟁을 펼치는 셈이다. 콸리아렐라의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콸리아렐라의 장기는 꾸준함이다. 화려한 득점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결정력에 약점이 있던 과거의 모습과 상반된다. 그의 득점 대다수는 페널티박스 안 문전에서 터진다. 정확한 위치 선정과 뛰어난 결정력이 돋보인다. 지난 시절에 비교해 중거리 슛 비율은 줄었지만, 훨씬 간결하고 정확해졌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로 경기를 장악한다.
그의 가치는 비단 결정력만이 아니다. 골문 앞에서 득점을 노리는 타겟형 스트라이커와 달리 콸리아렐라는 넓은 범위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콸리아렐라가 상대 수비수들과의 경쟁에서 이겨내며 만들어 낸 포스트 플레이 과정에서 득점이 터지기도 한다. 로렌조 인시녜, 치로 임모빌레 같은 기존의 원톱 공격수들이 부진하며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에 낙마했던 치욕적인 아픔을 겪었던 이탈리아로서는 콸리아렐라의 존재는 천군만마와 같다.
콸리아렐라는 지난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상승세 비결로 소속팀에 대한 애정을 꼽았다. “이곳에 있으면 마치 집에 있는 것과 같다. 편안하다. 팬들과 이 도시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며 웃어 보였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