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골 다득점 규칙, 폐지하면 안되나요?

입력 2019-05-05 16:00
토트넘 홋스퍼 공격수 손흥민이 지난달 18일 맨체스터 시티와의 2018-2019 유럽축구연맹(UEFA) 8강 2차전에서 4강 진출을 확정한 후 기뻐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진행되는 축구 토너먼트 대회는 대부분 원정 다득점제를 채택하고 있다.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가 그렇다. 원정 경기 득점은 홈경기 득점보다 더 어려운 만큼 순도가 높다. 원정 1골이 사실상 1.1득점의 가치를 지니는 셈이다.

원정 다득점제는 때로는 극적인 결말을 가져다준다. 올 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잉글랜드 토트넘 홋스퍼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이득을 봤다. 각각 8강·16강전에서 합계 점수 4대 4, 3대 3으로 동률을 이뤘으나 원정골 다득점 규칙 덕에 상위 라운드로 진출했다.

감독들의 수 싸움도 치열해졌다. 1·2차전 전략이 전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라인을 올릴지 내릴지, 공격적으로 나설지 수비적으로 변환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원정 다득점제가 가져다준 흥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원정 다득점제는 1965-1966시즌 유럽 위너스컵(現 챔피언스리그 전신) 당시 처음 도입됐다. 여러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대회의 흥행을 고려해서다. 경기장을 찾아온 관중과 팬들의 환호성이 가장 높아지는 순간은 단 하나다. 공격작업의 완성물인 골이 터질 때다. 두 팀이 모두 이론적으로 전술상 완벽한 경기를 펼쳤을 때 나오는 점수는 0대 0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경기에서 얻을 수 있는 흥분감은 경기력과 별개다. 대체로 0대 0경기보다는 2대 2가, 그보다는 3대 3이 더 재미있다.

그래서 공격축구를 유도하려는 방편으로 제안된 것이 원정 다득점제다. 원정팀이 수비적으로 내려앉아 경기 운영을 펼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원정 와서 득점하면 크게 유리해지니, 득점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라”는 암묵적인 강요로 해석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원정경기를 치르는 팀에 일정 부분 어드벤티지를 주기 위함이다. 홈구장은 수많은 팬의 응원을 등에 업고 싸울 수 있는 데다 이동 거리도 없으므로 체력적 부담도 덜하다. 익숙한 공간이다 보니 선수 개인마다 경험으로 축적된 나름의 노하우도 있다. 원정경기보다 홈경기가 더 유리하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1·2차전 180분의 정규시간 동안 승부를 가리지 못하면 연장전과 승부차기로 넘어간다. 그 장소는 2차전 홈이다. 원정 다득점제가 없다면 2차전 원정팀은 연장전에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지난 3월 파리 생제르맹과의 2018-2019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 승리한 후 기뻐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런 규칙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최근 수년간 원정 다득점제를 폐지하자는 목소리는 꾸준히 이어졌다. 지난해 9월 주제 무리뉴, 디에고 시메오네, 우나이 에메리 등 유럽을 대표하는 감독들이 토론회에서 원정 다득점제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유럽축구연맹 사무총장을 맡은 조르지오 마르체티 역시 변화를 주장하고 있다.

반대하는 이들은 원정 다득점제가 오히려 경기의 재미를 반감시킨다고 주장한다. 잉글랜드 축구대표팀 공격수 출신 게리 리네커는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원정 다득점제의 폐지를 주장했다. 모든 팀이 1차전에서 몸을 사린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맨유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8강 1차전 경기를 예로 들었다. “홈팀은 원정팀에 골을 내주기를 두려워한다. 원정팀은 한 골만 넣으면 ‘이제 됐다’란 생각으로 모험을 꺼린다”고 말했다. 공격축구를 장려하기 위해 생겨난 규칙이 오히려 수비적으로 내려앉게 만든다는 설명이다.

원정 다득점제가 의미가 없다는 목소리도 등장했다. 과거에는 축구공과 운동장 규격이 제각이고 국가 간 이동에 불편함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환경적 어려움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현대축구에서는 주최 측이 지정한 공인구와 동일한 경기장 규격을 사용하고 있다. 이들은 원정골 득점과 홈경기 득점에 큰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알렉산더 세페린 유럽축구연맹 회장은 지난 2월 원정 다득점제 폐지에 대해 공식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으나 추후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말 대로면 올 시즌이 끝난 후 원정 다득점제 폐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