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삭발 정치’의 역사…6년 만에 부활, 성공 거둘 수 있을까

입력 2019-05-04 12:13
김태흠 자유한국당 좌파독재저지특위 위원장을 비롯해 윤영석·이장우·성일종 의원과 이창수 충남도당 위원장이 2일 오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삭발식을 하고 있다.

여의도에 ‘삭발 정치’가 부활했다. 자유한국당이 여야 4당의 선거제·공수처 관련 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반발하며 12년 만에 삭발 투쟁에 나선 것이다. 지난 2일 한국당은 국회 앞에서 집단 삭발식을 열었다. 김태흠 좌파독재저지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윤영석·이장우·성일종 의원, 이창수 충남도당위원장 등 5명은 나란히 앉아 동시에 머리를 밀었다.

이들은 삭발식에서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을 패스트트랙에 태운 의회 민주주의 폭거에 삭발 투쟁으로 항의한다”며 “비정상적인 국정 운영이 정상화될 때까지 끝까지 싸워나갈 것을 천명한다”고 밝혔다. 패스트트랙 지정을 취소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집단 삭발이 있을 거란 예고도 했다.

한국 정치 역사에서 삭발은 결의를 극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지지를 끌어내려는 용도로 쓰였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야당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삭발은 단식처럼 건강에 해롭지 않지만 시각적으로 강렬한 효과를 주는 장점이 있다. 역대 한국 정치권 삭발의 역사를 되짚어 봤다.

한국 정치 ‘삭발’의 역사

설훈 의원은 야당이던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이에 항의하며 삭발과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한국 정치권의 ‘첫 삭발’은 무려 3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7년 박찬종 전 의원은 당시 김영삼·김대중 양김의 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며 삭발과 동시에 단식 투쟁에 나섰다. 여기에는 상도동계·동교동계 의원 12명과 함께했다. 하지만 이는 끝내 실패로 돌아갔고, 박 전 의원은 통일민주당을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선거에 당선됐다.

그 이후 삭발을 강행한 정치인은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다. 설 의원은 야당이던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이에 항의하며 삭발과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그 전에 1997년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항의한 김성곤 의원이나 1998년 선거법 위반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던 정호선 의원의 삭발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김충환·신상진·이군현 의원 등 한나라당 원내부대표 3명은 사학법 재개정을 요구하며 2007년 삭발을 감행했다.

‘삭발 투혼’이 소정의 성과를 거둔 경우도 있었다. 2007년 한국당의 첫 집단 삭발이 대표적이다. 당시 김충환·신상진·이군현 의원 등 한나라당 원내부대표 3명은 사학법 재개정을 요구하며 삭발을 감행했다. 당시 투쟁은 성공으로 끝났다. 삭발식 다음날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요구한 주택법 개정안을 합의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이다. 결국 당시 한나라당 뜻이 반영된 사학법 재개정안이 국회에서 처리됐다.

2010년 세종시 수정안 철회도 마찬가지다. 당시 이상민 민주당 의원 등 충남에 지역구를 둔 5명 의원은 ‘세종시 수정안 결사저지 규탄대회’를 열고 이명박정부가 추진 중이던 세종시 수정안을 철회시키기 위해 집단 삭발실을 했다. 결국 그해 6월 세종시 수정안은 국회에서 부결됐다.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앞둔 2013년 11월 통진당 소속 의원 5명이 삭발을 단행하고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삭발 투쟁은 2013년이다. 당시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앞두고 소속 의원 5명(김재연·김미희·이상규·오병윤·김선동)이 모두 삭발을 단행하고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지만 끝내 당 해산을 막진 못했다. 이번 패트트랙 저지를 위한 한국당의 집단 삭발도 소정의 결과를 거둘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