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 딸을 살해한 계부와 친모의 행적이 경찰 수사로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부부가 범행 전 2주간 전국여행을 떠났고, 시신 유기 장소를 세 차례나 찾았다가 경찰차가 와있는 것을 목격한 뒤 입을 맞춘 정황도 밝혀졌다.
계부 A씨는 지난달 초 아내 B씨로부터 C양(12)이 자신을 성추행 가해자로 신고한 사실을 전해 들었다. C양은 A씨가 음란 사진을 보낸 것과 성폭행 시도 사실을 피살되기 전 친부에게 털어놨다. 격분한 친부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B씨에게 항의했고, A씨 귀에도 들어갔다.
A씨의 성추행 혐의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B씨 때문이었다. B씨가 A씨 휴대전화를 보던 중 C양과의 메신저 대화방에 음란 사진들이 전송된 것을 발견했다. B씨는 곧장 A양 친부이자 자신의 전 남편에게 전화해 “딸 교육을 똑바로 시키라”고 말했다. C양은 친부의 추궁 끝에 성추행 피해 사실을 토로했다.
A씨 부부는 경찰에 신고가 접수된 사실을 들은 뒤 생후 13개월 된 아들과 전국여행을 떠났다. 동해안을 거슬러 올라가 서해안으로 타고 내려오는 동선이었다. 마지막 행선지는 전남 목포. C양이 친부와 살던 곳이다.
A씨는 범행 전날인 지난달 26일 오후 6시50분쯤 목포 시내의 한 철물점과 마트에서 범행 도구를 구입했다. 그날 밤은 목포의 한 모텔에서 보냈다. A씨는 이튿날 공중전화로 C양을 불러내라고 B씨에게 지시했다. 경찰은 B씨가 이후 자신의 휴대전화로 한 번 더 전화해 길을 걷던 C양을 차까지 데려온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범행 장소인 무안의 한 농로로 차를 몰면서 뒷좌석에 앉은 C양과 성추행 신고 사실을 두고 말다툼을 벌였다. 당시 차량 조수석에는 A씨 부부의 젖먹이 아들이, C양 옆에는 B씨가 앉았다.
A씨는 범행 전 차량 밖에서 B씨와 담배를 피웠다. 그는 B씨에게 “(C양을) 살해할 테니 차 밖에 있든지, 안에 있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말했다. B씨는 “안에 있겠다”고 답했다.
A씨는 차량 뒷좌석에서 C양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B씨는 A씨의 지시에 따라 아들의 눈을 기저귀 가방으로 가렸다.
부부는 C양 시신을 트렁크에 옮긴 뒤 광주 북구 자택으로 돌아왔다. A씨는 이후 12시간가량 시신을 유기할 장소를 찾아다녔다. 그는 지난달 28일 오전 5시30분쯤 광주 동구의 한 저수지에 C양 시신을 유기했다.
A씨는 세 차례나 시신 유기 장소를 다시 찾았다. 두 차례는 B씨도 함께였다. 마지막 방문 때 경찰차가 와있는 것을 본 부부는 A씨가 책임을 지고 가자는 취지의 대화를 나눴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C양 시신은 지난달 28일 오후 2시57분쯤 행인에 의해 발견됐다. A씨는 이날 자수했다.
구속된 A씨는 영장 실질 심사에서 C양의 성범죄 신고에 앙심을 품었다며 보복성 살해·유기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다만 강간미수 혐의는 부인했다.
살인 및 시신 유기 방조 혐의를 받는 B씨는 범행 장소에 있었던 점, 시신 유기 사실을 알고 있었던 점 등을 모두 인정했지만 “남편에게 해코지를 당할 것이 두려웠다” “나도 무서웠다”고 주장했다. 범행을 적극적으로 공모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A씨도 경찰 조사에서 “B씨가 (살해 당시) 소극적으로 말리긴 했지만 나중에는 체념한 듯했다”고 말했다.
법원은 B씨에 대해서는 “피의자를 구속할 사유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수집된 증거만으로는 범죄 사실을 소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경찰은 추가 증거를 확보해 검찰과의 협의를 거쳐 구속영장 재신청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