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출판사에 1500억원 누가 물어주나.. 교육부와 교육청 ‘옥신각신’

입력 2019-05-03 15:06



교과서 가격 관련 소송에서 승소한 출판사들이 교육 당국에 그간의 손해를 보전해달라고 거액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교육부와 시·도교육청들이 이 돈을 누가 부담할지를 두고 대립하고 있다.

3일 교육부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 따르면 교과서를 제작하는 출판사 17곳이 최근 교과서 대금 미정산금 1500억원을 교육부에 청구했다. 발단은 이명박정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명박정부 당시 교육과학기술부는 참고서 필요 없는 양질의 교과서를 통해 자기주도학습을 유도하는 ‘교과서 선진화 방안’을 추진했다. 양질의 교과서를 만들도록 출판사 간 경쟁을 붙였고 이후 교과서 가격이 가파르게 뛰었다.

정부 재정 부담이 증가하고 학부모 부담도 늘자 정부는 가격을 낮추도록 출판사들을 압박했다. 지난 2014년 3월 출판사들이 전년도보다 교과서 가격을 73% 인상하려고 하자 교육부가 가격 인하 명령을 내렸다. 초등학교 교과서는 34.8%, 고교 교과서는 44.4%를 낮추도록 했다.

출판사들은 제작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부당한 가격이라며 가격조정 명령 효력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지난 1월 31일 대법원은 “교육부장관이 실제 부당한 가격인지 증명하지 못했다”며 출판사 손을 들어줬다. 이에 따라 당시 정부가 내린 가격 조정 명령은 취소됐다. 최근 출판사가 청구한 1500억원은 교과서 대금 차액에 지연 이자 등이 붙은 금액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시도교육청과 함께 미정산금의 정확한 산정을 위한 자료확인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후 출판사와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패소가 확정되자 시·도교육청 6곳은 예산을 편성해 출판사에 돈을 지급하려 했다. 그러나 이를 취소하고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차원에서 대응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부가 당초 무리하게 가격조정 명령을 내렸고 시·도교육청들은 이에 따랐을 뿐이니 국고에서 부담해야 한다는 얘기다. 시도교육감협의회 관계자는 “예산 부담과 관련해 (교육부와) 이견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교과서 대금은 원래 시·도교육청이 부담이란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과서 대금은 교부금을 통해 시도교육청에 지급되고 있다. 당시 (교육부의 가격조정 명령으로) 교육청들은 교과서 대금을 아껴 다른 곳에 활용했다. 아낀 예산을 교육부에 반납한 것도 아닌데 국고 부담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모두 갈등으로 비치는 건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다. 하지만 진행 중인 소송까지 출판사가 이기면 물어줘야 할 금액이 2000억원 이상이 될 수 있어 책임 공방이 가열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